[경제] 서울 하위 20% 집값이 지방 상위보다 비싸…커지는 '지역 패싱&a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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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자리를 잡은 손모(42) 씨는 2018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를 16억원(전용 84㎡)에 매입했다. 부산에서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부모님에게 기왕이면 서울에 사야 한다고 설득했다. 손씨는 “내 능력만으로 사긴 힘든 금액이었고, 부모님 노후까지 생각해 공동 투자를 한다는 생각으로 샀다”고 말했다. 손씨의 판단은 맞았다. 이 아파트 단지는 최근 31억원대에 거래됐다. 당초 손씨의 부모가 사려던 부산 아파트는 같은 기간 6억원에서 9억3000만원으로 3억3000만원 상승했다.

18일 서울 남산을 찾은 관광객이 도심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9일 한국부동산원의 매입자거주지별 거래현황에 따르면 올해 서울 외 지역 거주자의 서울 아파트 매수 비중은 23.3%로 전년(22.8%) 대비 0.5%포인트 상승했다. 2023년(24.6%)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다. 2017년까지 10%대에 머물던 서울 외 지역 거주자의 서울 아파트 매수 비중은 2018년 처음 20%를 넘어섰고, 2023년 이후엔 평균 23% 정도의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 매수인의 약 4분의 1은 외부인이었다는 의미다.
강남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6억원 대출 규제 발표 이후 약간 진정됐지만 지금도 하루에 서너건 정도는 지방 거주자의 매수 문의가 있다”며 “자녀가 대학에 다니거나 취업을 한 경우 이를 계기로 투자를 하려는 수요가 상당수”라고 전했다.
서정열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한, 무주택자 입장에선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한다면 서울을 먼저 쳐다보게 된다”라며 “지금처럼 사람과 자원, 투자가 수도권에만 몰리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입법조사처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에 속한 7개국 가운데 한국은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9%로 가장 높다. 국내총생산(GDP)의 수도권 집중도(52.3%)와 일자리(고용보험 피보험자 수 기준) 집중도(58.4%) 역시 압도적인 1위다. 더 큰 문제는 집중도가 갈수록 심화한다는 점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도는 1992년 44.1%에서 2024년 50.9%로 증가했고, GDP 집중도 역시 1985년 44.2%에서 2023년 52.3%까지 상승했다.

차준홍 기자
이런 분위기에서 ‘지방 패싱’은 자연스럽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15년 6월 6대 광역시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2억1535만원이었다. 수도권(3억5274만원)과 약 1억4000만원 차이였다. 하지만 올해 6월엔 6대 광역시 3억6818만원, 수도권 7억8190만원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같은 기간 6대 광역시와 서울과의 아파트값 차이는 3억원 수준에서 약 10억원으로 커졌다. 10년 새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8억원 넘게 올랐지만 6대 광역시는 1억5000만원 상승하는 데 그쳤다.
5분위별 평균 매매가격으로 쪼개보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올해 5월 서울 상위 20%(5분위)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 5월 처음 30억원대에 올라선 데 이어 6월엔 31억4419만원까지 상승했다. 6대 광역시 5분위 아파트(7억3392만원)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2015년 5월(9억6297만원)과 비교하면 10년 새 22억원가량 상승했다. 심지어 서울은 하위 20%(1분위) 아파트값도 4억9085만원으로 6대 광역시를 제외한 기타지방 5분위 아파트값(4억9014만원)보다 비싸다.
올해 1~5월 지방 아파트값은 전년 대비 0.88% 하락했다. 지방 아파트값은 2021년 10% 이상 상승한 이후 2022년 -5.54%, 2023년 -5.02%, 2024년 -1.67%를 기록하며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니 거래도 부진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4년 부산의 아파트 매매 건수는 2만9765건으로 최근 5년 중 거래가 가장 많았던 2020년(8만853건)과 비교할 때 63.2%나 급감했다. 대구(-51.3%)∙광주(-47.5%) 등도 감소 폭이 컸다.
미분양 규모도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5월 기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7013가구로 2013년 6월(2만7194가구) 이후 약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82.9%인 2만2397가구가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부동산 시장의 활동성을 측정하는 주요 지표다.

차준홍 기자
실제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준공 후 미분양이 가장 많은 대구(3844가구)는 신축 아파트 단지에 ‘잔여 세대 특별혜택’, ‘선착순 파격가’ 같은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체 700세대 가운데 약 500세대가 미분양된 단지도 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한창 시장에 불이 붙었던 2020년 전후 착공한 단지들인데 비어 있는 곳이 적지 않다”며 “입지가 좋은 일부 단지는 또 경쟁률이 높게 나오는 걸 보면 대구 내에서도 양극화가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조차 얼어붙은 상황이 지속하면서 ‘FOOP(과매수 공포, Fear Of OverPaying)’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격이 더 내려갈지도 모르는데 지금 비싸게 살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서 시장이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고령화나 일자리 같은 지방 경제의 구조적 난제 해결하지 않으면 격차 줄이기는 요원하다”며 “단기적으로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를 시행하며 지방은 유예했듯 부동산 정책도 이젠 수도권과 지방을 투트랙으로 접근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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