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느슨한 자동차보험 노린다…'한방 세트' 진료비 4년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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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침을 놓는 모습. [사진 Pixabay]

서울에 사는 A씨(53)는 지난 3월 운전 중 차선을 변경하던 차량에 부딪혀 요추 염좌 진단을 받았다. 경상(상해급수 12급)에 해당했지만 8일간 입원했고, 통원 치료도 11번 진행했다. A씨는 통원 과정서 주로 첩약과 약침, 추나, 부항 등의 한방 진료를 한꺼번에 받았다. 입·통원 치료비는 총 370만원 안팎, 통원 치료에만 건당 9만6000원 이상 들었다. 같은 경상 환자의 건강보험 진료비(건당 4만9000원·지난해)와 비교하면 훨씬 많은 편이다.

느슨한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을 타고 증세가 경미한 환자 중심의 '과잉의료' 행태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하루에 여러 한방 진료를 몰아서 시행하는 세트청구(다종시술) 액수가 최근 4년 새 두 배 이상 뛴 게 대표적이다. 이는 자보 진료비·손해율 증가를 거쳐 전체 가입자의 부담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보험개발원 등에 따르면 한방 중심으로 자동차보험 진료비가 증가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한의원·한방병원(한방)의 자보 환자 진료비는 2015년 3580억원에서 2023년 1조4888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같은 기간 병·의원(양방) 진료비가 1조1978억원에서 1조727억원으로 뒷걸음질한 것과 대비된다. 총진료비 중 한방이 차지하는 비중도 23%에서 58.1%로 크게 올랐다.

특히 자보 경상 환자(12~14급)에 지급되는 보험금이 중상(1~11급)보다 훨씬 늘어났다. 2015~2022년 경상 환자에 지급된 보험금은 87.4% 늘었지만, 중상 환자 대상 보험금은 11.3% 느는 데 그쳤다. 특히 손해보험 4개사(삼성·현대·KB·DB)에 따르면 지난해 경상 환자의 1인당 치료비는 한방이 102만원이었다. 양방(33만원)의 3배를 넘는다. 한방·경상, 양축이 맞물린 진료비 증가가 뚜렷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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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배경으론 자보 진료 기준의 구멍이 꼽힌다. 양방은 건강보험 수가 기준을 따라 틈이 적은 편이지만, 한방은 환자 적응증(특정 진료 시 효과가 기대되는 증상) 등의 기준이 미흡한 편이다.

대표적인 게 한방 통원 진료에서 시행되는 세트청구다. 뜸·부항·약침·추나 및 전기요법·첩약 등의 진료 항목이 하루 6개 이상 이뤄지는 걸 말한다. 환자 상태와 무관하게 통증 감소 등 비슷한 목적의 치료가 중복될 여지가 크다. 예를 들어 발목 염좌·긴장 진단을 받은 30대 환자 B씨가 의원을 찾았더니 주사·열 치료 등에 대한 진료비 4만4910원이 나왔다. 반면 같은 날 한의원에선 약침과 부항, 전기자극, 첩약 등을 합쳐 20만8030원이 나왔다.

손보 4개사에 따르면 세트청구 진료비는 2020년 2506억원에서 지난해 5353억원으로 2.1배가 됐다. 한방 진료비 중 세트청구 비중도 같은 기간 47.5%에서 68.2%로 빠르게 올랐다. 특히 치료 필요성이 높은 중상보다 경상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12~14급 환자의 세트청구 진료비 비중은 69.7%로 9~11급(58%)보다 높게 나왔다.

과잉진료 의심 사례가 잘 걸러지지 않으니 의료기관이 더 많은 치료를 권하고, 환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해지는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빼먹으니 좋다'면서 한방 의료기관 간에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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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속도로에서 차량끼리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발생해 현장 수습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하지만 의료계·보험업계 등의 입장이 엇갈린 자보 심사 개선은 쉽지 않다. 건보 심사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토교통부 대신 자보 환자 심사까지 맡지만, 수가 기준 등엔 관여하지 못 하는 모순된 상황도 문제로 꼽힌다. 그러는 사이 경미한 증상에도 양·한방을 오가며 4635만원의 치료비를 청구한 '의료쇼핑'(26세 여성·12급) 환자가 계속 나온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세트청구라지만 환자가 빨리 나을 수 있게 최대한의 진료를 하는 것일 뿐이다. 여러 번 나눠 치료하는 것보다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게 총진료비도 줄일 수 있다"면서 "진료비 증가도 과잉진료나 수가 문제보다는 치료 후 만족도나 효과가 높아 한방을 선택하는 환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잉진료 기관 모니터링 강화 등 제도 허점을 틈탄 의료쇼핑을 막을 방안이 시급하다. 이대로면 한방 진료비가 매우 빠르게 늘면서 자보 소비자의 보험료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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