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기부…‘더기버스50’ 3차 명단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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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위크 ‘더기버스50’ 선정
한국의 기부자들 누적 30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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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부자들: The Givers 50’(이하 더기버스50)의 세 번째 선정자들이 오늘(10일) 공개됐다. 예술·디자인·의료·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 온 인물들로 김유리·김창희·김홍렬·배상민·백동민·서도성-박경자(부부)·신현각·이경제·이경혜·정슬아 등이다.

‘더기버스50’은 유명인이나 초고액기부자가 아닌 각자 처한 환경에서 의미 있는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기부자를 조명하는 프로젝트다. 중앙일보 공익섹션 더버터와 비영리단체들이 함께하는 민간 주도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 ‘파이위크(Pie Week)’의 일환으로 매년 50인을 선정한다. 파이위크 참여 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추천한 후보자 중에 내부 기준에 따라 최종 50인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금까지 공개된 기부자는 30인이며, 남은 20인은 더버터 지면과 파이위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순차적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기부자 선정 기준은 ▶지속성 ▶태도 ▶스토리 ▶영향력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금액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가’를 중시하며, 다양한 삶과 나눔의 방식을 고르게 담아내는 데 초점을 둔다.

올해 ‘2025 파이위크’ 캠페인에는 23개 비영리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국제구조위원회, 굿네이버스, 굿피플, 기아대책, 대한사회복지회, 밀알복지재단, 바보의나눔,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사랑의달팽이, 세이브더칠드런, 열매나눔재단, 월드비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난민기구, 초록우산, 컨선월드와이드, 케이와이케이파운데이션, 플랜인터내셔널코리아, 한국컴패션, 한국해비타트, 함께일하는재단, 함께하는사랑밭, 홀트아동복지회(이상 가나다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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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10% 기부에서 시작한 15년 나눔 | 김유리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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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알았어요. 아버지가 초등교사였는데 형편 어려운 제자들의 학비를 대신 내주셨다는 걸요. 할아버지께서도 교사 시절 제자들 입학금을 대신 내주셨다는데, 그걸 이어가셨다고 해요.”

김유리 기부자의 나눔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시작은 대학생 때 용돈의 10%를 기부하면서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열매나눔재단에 매달 빠짐없이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매년 열리는 후원자 행사에 개근할 정도로 변함없는 마음이다.

최근에는 재난이 잦아지면서 긴급 기부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돈을 따로 모아두기도 한다. 정말 필요한 순간, 꼭 필요한 곳에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작게 시작했지만 오래 할 수 있었고, 그게 제 방식인 것 같아요.”

마을 어르신께 한 끼 식사 대접하는 변호사 | 김창희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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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되면서 인생의 30%는 사회를 위한 몫으로 비워두자고 결심했어요.”

김창희 기부자는 2018년 부산 북구 기초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봉사 현장에서 늘 마주치던 장면이 있었다. 주민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려고 해도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마을부엌정지협동조합’이다. 마을 공유주방으로 공간을 구했고 조리기구는 사비로 채워 넣었다. 이를 계기로 굿피플의 식사지원사업 ‘모두의한끼’에 참여하게 됐고, 정기기부로 이어졌다.

그의 나눔은 금전적 기부에 머물지 않는다. 공익법단체 두루의 ‘온마을로’ 프로젝트를 통해 미등록 출생 아동, 다문화 가정 아동에게 법적 도움을 주고 있다.

김창희 기부자의 나눔은 특별한 계기보다 ‘할 수 있어서 하는 일’의 연속이다. 그렇게 오늘도 여러 얼굴로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있다.

웹툰작가가 된 건축학도의 재능기부 | 김홍렬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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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도면을 그리던 건축학도 김홍렬 기부자는 창작의 꿈을 좇아 웹툰 작가가 됐다. 분야는 달라졌지만 사람에게 머물 공간, 즉 보금자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대로였다.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 6년 전, 한국해비타트의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땀 흘려 집을 지은 이야기를 웹툰으로도 그리고 기부도 시작했다. “예전엔 집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급했어요. 자가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기부와 봉사를 하니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한국해비타트에 정기기부 외에도 굿즈, 연차보고서 제작을 위한 일러스트 재능기부를 했다. 지난해에는 독자들과 집짓기 봉사에 나섰다. “더 완벽할 필요 없어요. 각자 지금 가진 능력만으로, 충분히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합니다.”

디자인은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입니다 | 배상민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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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민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디자인을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아주 멀리, 그리고 낮은 곳에 있다. 아프리카의 식수 문제부터 저소득층 아동의 교육, 장애인의 접근성까지. 그는 그곳에 디자인을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20년을 ‘필란트로피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나눔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는 디자인 제품의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한다. 근본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연구실에서 개발하고, 현장에 보급하는 일도 마다치 않는다. 지금까지 월드비전에 기부한 규모는 17억원에 달한다. 개발비는 전부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디자이너의 지식과 경험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일 수 있다면 이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기부 트럭’ 운전하는 떡볶이집 사장님 | 백동민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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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에서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는 백동민 대표는 종종 특별한 출장을 간다. 특수학교 운동회, 지역 복지관 행사, 군부대 등이 그의 출장지다. 수백 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려면 재료비도 적잖이 들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음식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내가 만든 메뉴를 맛있게 먹어줄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백 대표의 기부는 1994년 신촌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하던 때부터 이어져 왔다. 2013년부터는 홀트아동복지회와 인연을 맺고 장학금과 물품 기부를 했다. 각종 행사가 열릴 때면 떡볶이 트럭을 몰고 달려갔다. 그의 선행을 응원하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손님들이 기부해달라면서 가게에 저금통이나 용돈을 두고 가는가 하면, 지인들이 떡볶이 트럭 재료비로 써달라며 정성을 보태기도 한다. 백 대표는 “가늘고 길게, 지금처럼 기부와 봉사를 오래 이어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웃을 살리는 일, 세상을 바꾸는 일 | 박경자·서도성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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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을 돌보지 않고서는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경남 진주 토박이인 박경자·서도성 부부는 이런 믿음을 오랜 세월 지켜왔다. 이는 곧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서도성 기부자는 30년 넘게 지역의 문화예술 단체, 환경 단체, 농민회 등 10여 곳을 후원해 왔다. 아내 박경자 기부자도 지역의 복지시설을 틈날 때마다 찾아가 봉사활동을 했다.

두 사람은 각각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서 4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들에게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일굴 ‘자립의 힘’을 키워주는 일이었다. 은퇴 후에는 열매나눔재단 후원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각각 15년, 12년 동안 자립을 돕는 다양한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서도성 기부자는 “이웃을 향한 사랑은 곧 나라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전장에서 만난 아이들을 잊지 못한 참전용사 | 신현각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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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눈동자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신현각 광혁건설 대표는 55년 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공포감과 슬픔, 이 뒤섞인 아이들의 눈빛은 기억 속에서 계속 또렷해졌다. 나이 서른이었다.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한사회복지회에 학생들을 위한 후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기부가 올해로 48년째다. “기부에는 중독성이 있어요. 힘든 사람이 있으면 좀 나눠 쓰면 좋지 않겠습니까.”

광혁건설 사무실에는 나무로 짠 모금함이 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매일 현금을 넣는다. 모은 돈은 매월 복지기관에 전달한다. “회사 사정이 좋을 때는 하루 50만원도 넣었습니다만, 많은 돈을 넣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더 하고, 어려워도 그냥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비영리가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합니다 | 이경제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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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3년째 한의원을 운영하는 이경제 원장에게는 한 가지 신념이 있다. 직원이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돌보는 사람의 여유와 행복이 곧 환자에게도 전해진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다.

이런 마음은 기부로도 이어졌다. 집 근처에 장애인을 위한 밀알학교가 들어설 때,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는 걸 보며 언젠가 그곳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1월 그는 기존에 해오던 기부와는 별도로 밀알복지재단에 매달 200만원씩 추가 기부를 시작했다. “이 기부금만큼은 꼭 직원들을 위해 써달라”는 뜻도 함께 전달했다.

“재단에서도 이런 형태의 기부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기부가 표면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싶습니다.”

65세에 받은 임명장, 급여 25% 기부합니다 | 이경혜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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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혜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대학 때 발병한 홍채염으로 20년간 투병하다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투병 이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부산점자도서관장부터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공동대표, 부산시의원까지. 장애 당사자의 경험과 정책 전문성을 바탕으로 장애인 권익을 조금씩 바꿔온 삶이었다.

지난 2023년, 65세에 공공기관장으로 임명될 때 그는 결심했다. “급여의 4분의 1은 기부하자.” 그의 결심은 바보의나눔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나눔은 복지 정책 안에서 구조적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빈틈을 메우는 일이다. “거액은 아니지만 지금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였으면 해요. 잠시라도 덜 아프고, 덜 춥고, 가슴을 펴고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작년엔 느린학습자, 올해는 발달장애인에 기부 | 정슬아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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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를 결심한 건 2021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던 시기였다. 정슬아 기부자는 그해 세이브더칠드런에 1000만원, 이듬해에는 3000만원을 내놨다. 팬데믹은 취약계층의 삶을 어렵게만 했는데, 온라인 쇼핑몰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사업이 잘 되는 것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니까요. 그걸 깨닫고 나니까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기부하면서 비영리단체에서 지원하는 사업들도 하나씩 알게 됐다. 그는 “단체와 이야기하면서 느린학습자와 발달장애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6000만원에 이른다. 그의 기부 소식을 듣고 일부 직원들도 정기기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동료들이 나눔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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