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필란트로피 디자인으로 나눔을 실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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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부자들 배상민 KAIST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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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민 KAIST 교수는 2005년부터 20년간 ‘나눔 프로젝트’로 디자인 제품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고, 개발도상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직접 개발·보급해 왔다. 김용재 기자

15년 만의 귀국길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 삶을 정리하고 택한 한국행. 고향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아 든 모친은 말했다. “내가 공항에 마중 가야겠냐, 아니면 호스피스병원 봉사를 가는 게 맞겠냐.”

배상민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에게 나눔과 봉사는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지만 생생하네요. 자식보다 봉사가 먼저인 분이에요. 얼마나 지독한데요(웃음).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73세에 그만두셨어요.”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의 최연소 교수로 수많은 글로벌 기업의 상업 디자인을 맡았던 그는 사회문제 솔루션을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활동을 20년간 이어오고 있다. 지난 1일 대전 KAIST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디자인으로 아프리카 식수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도 있다”며 “디자이너의 지식과 경험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는 걸 ‘필란트로피 디자인(philanthropy design)’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나눔 인생에 가족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기부와 나눔에 굉장한 열의가 있어요. 어머니도 그렇지만, 외가 식구들이 대서양의 작은 섬 라스팔마스에서 홈리스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수많은 방식으로 나눔을 하는데, 저는 재능과 시간을 기부하는 겁니다. 제품 수익금으로 금전적인 기부도 하지만요.”
‘필란트로피 디자인’으로 세계 권위의 3대 디자인상을 모두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상이 70개 넘을 텐데요. 뉴욕에서 디자인할 때 받은 게 2개, 나머지는 필란트로피 디자인으로 받았어요. 학교에서 학생들과 연구해서 만든 의미 있는 작품들이 오히려 더 주목받은 거죠. 디자인의 본질은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디자인도 사람을 향해야 하는 거죠.”
하나만 소개한다면요.
“딜라이트(d’light)라는 전등인데요. 전등갓의 끝부분을 잡고 회전시키면 형태가 다양하게 변하면서 밝기를 조절할 수 있어요. 전구가 완전히 노출돼 가장 조도가 높을 때 전등갓이 하트모양을 이룹니다. 사랑이 있을 때 우리 사회가 밝아진다는 의미예요.”

배 교수는 ‘나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05년부터 디자인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월드비전과 협력해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저소득층 아동의 교육에 기부한다. 지금까지 제품 판매로 기부한 금액은 17억원에 이른다. 올해는 탄자니아에 정수 장치를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다.

직접 만든 제품을 나누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제품 디자인의 기준이 있나요.
“조건이 까다로워요. 우선 아름다워야 하고, 새로워야죠. 기능적으로는 좋은 동시에 반제품 형태로 만들 수 있어야 해요. 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요. 그래야 부품 수리도 할 수 있어요. 여기에 의미와 상징이 더해지면 ‘굿디자인’이 됩니다.”
올해 프로젝트는 뭔가요.
“간단하게 말해 정수기예요.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 가도 둥근 플라스틱 페인트통이 있는데, 오염된 물을 길어다 먹는 데 씁니다. 규격에 맞춰 뚜껑처럼 얹으면 태양열로 물이 끌어올려지고 그 과정에서 필터를 통해 물이 정수됩니다. 개인용은 하루 1ℓ, 대용량 커뮤니티용은 10리터 나옵니다. 전기 장치가 없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고, 황토로 필터를 제작할 수 있게 다 알려줄 계획입니다. 작은 가내수공업 공장을 만들어서 이웃마을에 판매하고 커뮤니티가 자립할 수 있도록 말이죠.”
연구 개발 비용도 상당할 텐데요.
“작년부터 월드비전과 진행하고 있는 ‘피니시더잡’ 프로젝트 외에는 지금까지 모두 사비로 충당했어요. 돈 벌어서 만드는 거예요(웃음). 학교에 과학적인 지식을 보태주실 전문가들도 많고요. 연구하기 얼마나 좋은 환경이에요. ‘내가 왜 계속하고 있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한국인의 정체성이 결국 나눔이에요.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게 반만년 전 고조선 건국이념이잖아요.”
나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과제로 시작한 일이지만 프로젝트 결과로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체험하면 표정이 달라져요. 그래서 연구실 학생들은 필란트로피 디자인 제품을 내놓거나 아프리카에 직접 제품을 설치하러 다녀와야 졸업할 수 있어요(웃음). 저도 보람이 크고,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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