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세상엔 바보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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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바보의나눔 상임이사 인터뷰

김인권 바보의나눔 상임이사는 “바보의나눔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이어받아 설립된 재단”이라고 말했다. 김용재 기자
햇볕에 보기 좋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사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신부가 아니라 농부라 해도 믿었을 것이다. 지난달 23일 명동대성당 사무실에서 만난 김인권(51) 바보의나눔 상임이사는 “산불 피해를 본 의성, 안동 현장에 다녀오느라 얼굴이 좀 탔다”며 웃었다.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은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고 이듬해 설립됐다. 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고민은 하나였다. 평생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인권·정의·나눔을 실천한 추기경의 뜻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가.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은 곳이 바보의나눔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김수환 추기경. 지난 15년간 바보의나눔은 그가 남기고 간 꿈을 부지런히 좇았다. 별나다 싶을 정도로 정직하고 우직하게 운영했다. 설립 첫해 8억원이었던 모금액은 지난해 145억원으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 김인권 상임이사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했다.
담배를 끊는 방법
- 자랑스러운 건 뭐고 아쉬운 건 뭔가요.
- “치열한 모금시장에서 10년 만에 100억원 이상 모금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는 게 놀랍고 자랑스럽죠. 하지만 추기경님의 유지를 이어가는 재단이라고 하기에는 모금 규모도 더 커져야 할 것 같아요. 설립 15주년인데 아직도 재단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 산불 피해 지역은 어땠나요.
- “체육관·경로당·마을회관에서 지내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걱정도 됐고, 한편으론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장을 돌다 보니 추기경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 어떤 생각이요.
- “추기경님은 정말 바쁜 일정 중에도 매년 성탄 전야에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성탄미사를 하셨어요. 교도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사형수들을 위로하셨고,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가족이 되어 주셨죠. 직접 보고 들어야 잘 도울 수 있으니까요.”
- 추기경님과 개인적인 인연도 있으신가요.
- “추기경님께서는 은퇴하신 뒤 혜화동에 있는 사제관에 지내셨어요. 저도 그때 2~3년 정도 함께 생활했죠. 추기경님은 저 같은 젊은 사제들에게도 권위를 세우지 않으셨어요. 한번은 추기경님을 독대한 적이 있었어요. 담배 끊는 게 쉽지 않다고 말씀드리니 담배 끊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추기경님도 담배를 피우시다가 1984년도에 끊었다고 하셨어요. 너무 궁금해서 어떻게 끊으셨냐 여쭈었더니 ‘딱! 끊었어’라고 하셨죠.”
- 딱 끊었다고요?
- “네.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추기경님은 중요한 결정을 하시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보낼 때 절대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이 있으셨어요.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신념이나 가치, 진리 이런 것은 타협하면 안 된다는 걸 농담처럼 저에게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미인가시설도 끝까지 돕는다
- 바보의나눔의 독특한 철학이 있다면요.
- “기본적으로는 공모사업을 통해 기부금을 배분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도움이 절실한 곳이라면 미인가시설이라 해도 가리지 않고 지원합니다. 요청이 올 때마다 ‘추기경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봐요. 그러면 쉽게 결정할 수 있죠.”
- 대표 사업에는 어떤 게 있나요.
- “추기경님께서는 이주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몸 아프면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며 걱정하셨어요. 혜화동 성당에 무료진료소 공간을 내주시기도 하셨죠. 바보의나눔도 이주민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2018년부터 공모배분사업 분야에 아예 ‘이주민’ 카테고리를 신설해 지원하고 있죠. 그중에서도 여의도성모병원과 함께하는 ‘미등록이주여성 산전검사비 지원사업’을 소개하고 싶어요. 미등록 이주여성이 임신 기간 동안 안심하고 검사를 받을 수 있게 여의도성모병원을 통해 지원하고 있어요. 전국 어디에도 이런 지원이 없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이주여성들이 기차를 타고 산전 검사를 받으러 옵니다.”
- 바보의나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게 좀 더 알려지면 좋을까요.
- “저희는 ‘특례기부금단체’입니다. 기부금 수입의 10% 이내로만 관리운영비를 사용할 수 있어요. 굉장히 엄격한 기준이라 운영비가 빠듯하죠. 대신 기부자들에게는 높은 세금 감면 혜택을 줍니다.”
- 기부자들이 좋아할 만한 정보네요.
- “실제로 많은 기업이 저희와 함께 기부금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금 혜택 면에서 상당히 이점이 있죠.”
- 정부 보조금은 받지 않는다고요.
- “네, 그래서 모금이 중요해요.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더 발굴하고 도와야죠. 홍보도 필요합니다. 바보의나눔이라는 곳이 있다는 게 알려져야 어려운 사람들이 저희를 찾아올 수 있잖아요.”
- 7월에 대규모 공모배분사업 접수를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 “43억원 규모로 공모배분사업을 접수받고 있어요. 이달 말까지입니다.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단체라면 어디든 신청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 기관을 우선으로 선정할 예정이에요. 인건비나 관리운영비에 제약을 두지 않고 유연하게 지원할 계획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 “자신을 낮춰 다른 이들을 편하게 해주는 마음입니다. 추기경님이 자신을 바보라고 했으니 우리 재단도 그 뒤를 따라야겠죠. 재단의 문턱이 더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바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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