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李 정부 첫 대아세안 외교 시동…미·중·일·러 외교수장도 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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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10일(현지시간)부터 이틀 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동남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다. 아세안 국가를 비롯해 미·중·일·러 외교수장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ARF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문제를 비롯한 글로벌 현안이 테이블에 오르며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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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행인들이 아세안 관련 회의 로고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사상 첫 외교차관 ARF 참석 

외교부에 따르면 박 차관은 이날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고 태국, 싱가포르와 양자 회담을 한다. 이튿날인 11일에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다. 오는 1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절차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외교차관이 처음으로 ARF 등 회의 전체를 대신 참석하게 됐다.

이번 ARF는 이재명 정부의 대아세안 외교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총 27개국이 참여하는 ARF는 동아시아 협력을 아세안이 주도한다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 5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46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선 향후 20년 동안의 대외 전략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가 채택됐다. 비전은 아세안의 지역적 역할 강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미·중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아세안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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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실용 외교 측면서 아세안 접점 많아" 

앞서 문재인 정부는 아세안 외교와 관련해 사람(people)·평화(peace)·번영(prosperity)의 3P를 핵심 가치로 삼은 '신남방 정책'을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는 자체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면서 자유·규범·가치를 앞세운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을 발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세안을 중시한다는 입장은 역대 정부를 관통하는 공통된 입장"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취임 후 5번째로 통화(6월 12일)하는 등 새 정부에서도 아세안 중시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재명 정부의 대아세안 정책이 확립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국익 중심·실용 외교’ 측면에서 아세안은 가까운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며 “최근 미국이 강조하는 경제안보, 관세, 핵심광물 공급망 등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도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아세안과 안보 협력은 지정학적 제약으로 현실적 한계가 있지만, 방산 협력은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세 폭탄 맞은 아세안…공동대응 준비 

이번 ARF 기간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관련 논의도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46%에서 20%로 낮춘 베트남을 제외하면 미얀마(40%), 라오스(40%), 태국(36%), 캄보디아(36%), 인도네시아(32%), 말레이시아(25%) 등은 최근 고율 관세를 서한 등으로 통보받은 상태다.

이에 AFP 통신은 지난 8일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트럼프의 새로운 국가별 상호관세안에 우려를 표하는 공동 성명 초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관세율이 낮은 동남아를 경유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6일)도 나왔다.

이와 관련, 조 교수는 “아세안은 대외 메시지를 낼 때는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각국이 개별적으로 양자 협상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며 “이번 회의에서도 대미 관세 우려를 집단적으로 표명하면서 동시에 각국이 양자 협상을 통해 실익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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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및 관련 회의 개막식에서 열린 공연. AP=연합뉴스

北 첫 불참 전망…말레이와 단교 여파 

올해 회의에는 아세안 10개국 외교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상,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이 참석한다. 박 차관과 이들 장관의 공식 회담은 급이 맞지 않아 어렵다. 그러나 앞서 방한이 무산됐던 루비오 장관이나 ARF 등 회의장에서 좌석이 나란히 배치될 라브로프 장관과 대화 등 비공식 접촉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역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안보 협의체인 ARF에 올해는 아직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불참한다면 2000년 ARF 가입 이후 처음이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부터는 외무상 대신 ARF 주재국 대사나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를 수석 대표로 보내며 '로 키'(low key)로 참여했다.

북한의 불참 결정은 말레이시아와의 냉랭한 사이 탓도 있다는 분석이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2017년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관계가 냉각됐다. 이후 2021년 말레이시아가 미국의 대북 제재를 위반한 북한 사업가를 미국으로 보낸 뒤 단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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