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자사주 불태워라’ 여당 상법 2R, 재계는 속만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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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편 입법 가속도

여당이 상법 개정을 통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편 입법이 전방위로 확장되고 있다. 이사 충실 의무 확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후속 입법도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시장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기업들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조차 사라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 부회장단은 이날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상법 개정에 따른 우려 사항을 전달했다. 부회장단은 개정 취지엔 공감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은 지난 9일 자사주를 취득한 뒤 1년 이내에 반드시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엔 예외적으로 보유를 허용하지만, 이 경우에도 반드시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여당은 더 강한 규제를 목표로 상법을 개정하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자본시장 밸류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상장사 1666개사(전체의 73.6%)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은 142개사(8.5%)에 그쳤다. 자사주 소각이 확대되면 발행 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을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려다 ‘편법’ 논란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한 효과로 기존 주주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한국기업거버넌스 회장을 맡고 있는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태광 사례에서 보듯 기업들은 ‘제도 틈새’를 찾아내 대주주 이익을 위해 행동해왔다. ‘소각 의무화’라는 강한 원칙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은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하기보단,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각이 유도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제외), 영국, 일본 등은 자사주 소각에 대한 법적 의무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독일의 경우 자본금의 10%를 벗어나는 초과분에 대해서만 3년 내 소각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는 자사주의 제3자 처분에 대해 엄격한 주주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를 보인다. 보고서는 “(한국에선) 자사주의 자의적 처분을 통한 지배권 강화가 기업들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가장 큰 사례”라고 지적했다.

결국 주주가치 제고와 경영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자사주에 인정되는 권리 제한 ▶불공정한 자사주 처분 시 주주 구제수단 도입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국 자본시장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대비책 논의 없이 자사주 소각만을 강제하면 악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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