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합천서 고개 숙인 히로시마 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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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요코타 부지사가 경남 합천 한국 원폭 피해자 위령각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80년 동안 한국인 피폭자 여러분이 받은 고통을 오늘 더욱 깊이 느꼈습니다. 피폭자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걸어오신 고통스러운 그 길들, 존엄과 경외의 마음을 담아서, 여러 가지 방면에서 저희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경남 합천군 합천 원폭 피해자복지회관 대강당. 요코타 미카(橫田美香) 일본 히로시마현 부지사는 한국 원폭 피해자 1·2세대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군,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등 10여 명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1시간 가까이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웠던 경험담과 향후 바람을 듣고서다.

다음 달 6일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80년을 앞두고 요코타 부지사 등 히로시마현 관계자 5명이 합천을 방문했다. 일본 지방정부 현직 고위 인사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 2016년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 전 히로시마 시장 등 전직 고위 인사만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원폭 피해를 본 한국인을 만나 위로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연대의 뜻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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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타 미카

원폭 피해자들과 대강당에서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요코타 부지사는 합천 원폭 자료관에서 비극의 역사를 먼저 돌아보고,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기리는 위령각을 찾아 참배했다. 요코타 부지사는 1167명의 원폭 피해 사망자 위패를 향해 분향한 뒤 고개를 숙였다. 원폭 자료관 방명록에는 “전 세계 피폭자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미래의 세계 평화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린 이유는 피해 규모 때문이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발생한 피해자 약 44만 명 중 7만 명(사망·생존 각각 3만5000명)이 조선인으로 추정되는데(당시 일본 내무성 자료), 이 중 70~80%가 합천군 출신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의 쌀 수탈로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합천 지역의 영세농민 상당수가 생계를 위해 군수산업이 밀집해 일자리가 많은 히로시마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합천에는 많은 원폭 피해자들이 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생존해 있는 원폭 피해자 1643명 중 243명이 합천에 산다. 이 중 60~70명은 합천 원폭 피해자복지회관에서 지내고 있다. 부산(368명), 대구(244명) 등 광역단체를 제외하고 기초단체 중 가장 많다. 원폭 피해자 1세대 김철주(87)씨는 “피폭으로 인한 부상과 병, 주위의 차별과 편견, 방사선이 자녀나 손자에게 미치는 건강상 영향, 또 일본 정부가 국가 보상 및 사과를 거부하는 것, 80년 동안 핵무기 근절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이날 이치바 준코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일본 시민모임’ 대표는 “8월 6일 일본에서 열릴 히로시마평화기념식에서 80년 동안 겪은 피폭의 고통, 일본 식민지 시대 어려움을 당하신 한국인분들께 사죄의 마음을 담아주셨으면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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