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클래식 음악은 왜 20세기 초반 이후 새로운 명곡이 없을까[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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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음악  
존 마우체리 지음
이석호 옮김
에포크

“오늘날 클래식 음악에서 불변의 상수로 꼽히는 고전 작품은 대부분 1710년에서 1930년쯤 사이에 쓰였다.”

미국 지휘자이자, 예일대 교수 출신의 음악 교육자‧저술가인 지은이의 일갈이다. 그가 ‘왜 클래식 음악에선 20세기 초 이후 새로운 시도와 대작의 맥이 끊긴 것일까’를 화두로 삼고 연구한 결과는 흥미롭다. 혹독한 전쟁과 대립으로 점철된 20세기의 역사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정치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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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테아트로 델 오페라'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디렉터 미켈레 마리오티가 이끄는 연습이 진행 중인 모습. [AP=연합뉴스]

20세기 음악에 정치 족쇄가 채워진 건 제1차 세계대전부터였다. 당시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한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적국인 프랑스의 음악과 파리에 살던 혁신적인 러시아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비난하는 데 몰두했다. 참전 직전 미국에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바그너 공연을 중단했다. 이미 1883년 세상을 떠난 바그너는 연합국에 의해 독일-오스트리아 정신의 상징으로 간주돼 배척됐다.

애국주의 다음에는 나치즘과 파시즘, 그리고 냉전이 연속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1933년 나치 집권과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 독일‧오스트리아에선 전통주의에서 벗어난 작품은 ‘퇴폐’로 간주돼 박해를 받았다. 1920년대 선풍을 일으켰던 실험적 음악가 쿠르트 바일, 파울 힌데미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나치 박해로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1차 대전 당시 스트라빈스키를 비난했던 쇤베르크도 같은 처지가 됐다.

이들은 미국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창작자가 됐다. 도전과 실험적 창작의 맥이 끊긴 유럽의 빈 공간은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의 오래된 레퍼토리로 채워졌다. 이탈리아에선 무궁한 국가적 자긍심의 원천이던 오페라가 파시스트의 망상에 오염됐다. 협력을 거부한 작곡가들은 작품이 금지 리스트에 올랐으며, 나라를 떠나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푸치니 이후의 작품이 함구 대상이 된 이유다.

전후 클래식 음악은 냉전의 싸움터가 됐다. 미국과 소련은 정책적으로 자국이 클래식의 적통임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목표는 같았지만 방법은 달랐다.

소련은 구상주의적 전통을 추구했다.  대중이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 마무리는 반드시 희망적인 메시지로 해야 했다. ‘진화하는 전통주의’를 추구한 셈이다.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가 소련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미국은 자유 서방을 위한 음악 미학을 추구했다. 2차 대전 직후 흑인으로 이뤄진 재즈 예술단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묶어 유럽으로 파견한 이유다.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으로 수행된 문화전쟁은 미국이 자유와 이민자의 다양성‧역동성을 바탕으로 새롭고 활기찬 예술을 창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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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국 LA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앞을 우산을 쓴 보행자가 지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그 결과 미국에선 대단히 도전적이고 인습타파적인 음악이 선호됐다. 낯선 아방가르드 양식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임을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실험적 예술론과 미학론을 퇴폐로 몰았던 나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중간은 없다시피 했다.

유럽에서 건너온 진보적 클래식이 새로운 창작 터전으로 삼은 곳이 할리우드였다. 1933년 이후 할리우드 영화음악은 유럽과 러시아에서 인종차별을 피해온 망명 작곡가들이 도맡았다. 최고음악원의 신동 출신인 이들은 재능과 열정을 바탕으로 영화와 음악을 융합해 ‘보는 음악’, ‘듣는 영화’의 시대를 열었다.

지은이는 나치에 의해 퇴폐음악으로 낙인찍혀 금지된 작품들을 찾아 1991년 음반사 데카에서 시리즈로 제작하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다. 해당 작곡가‧작품이 한가득인 데다, 히틀러의 살생부에 올랐던 작곡가의 상당수가 할리우드의 국부급 음악인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들은 교육자로도 업적을 남겼다. 12음 기법으로 현대음악의 새로운 언어를 개척한 쇤베르크는 자신에게 배우고 싶어한 ‘가장 미국적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마지막 멘토가 됐다. 힌데미트가 예일대에서 가르친 재즈음악가 미치 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작곡했다.

클래식은 낯선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전과 혁신을 계속했던 셈이다. 발굴된 ‘숨은 작품’이 주는 자극만으로도 클래식이 어쩌면 앞으로 새로운 진보 시대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원제 The War on Music: Reclaiming the Twentie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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