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고쳐 입는 '재미'와 다시 입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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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애쓰지

저 회사는 정의로울까? 과거 기업의 평가 기준은 숫자였습니다. 요즘은 환경(Environmental)에 대한 책임, 사회(Social)적 영향,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 등 이른바 ‘ESG 관점’에서 기업을 판단합니다. 비크닉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ESG에 애쓰는 기업과 브랜드를 조명합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은 잠시 잊어주세요. 착한 일은 널리 알리는 게 미덕인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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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 자수 기법인 사시코로 원단을 덧댄 티셔츠. 사진 유니클로

옷에도 생애주기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새 옷은 물론 옷장에서 몇 년 동안 잠자고 있는 옷도 생각과 행동에 따라 수명이 달라질 겁니다. 실제 2025년 전 세계 의류 시장 규모는 약 1.84조 달러(약 2528조원), 그중 리사이클 시장은 60억 달러(82조원)를 차지합니다. 아직 작은 숫자지만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지속 가능성 움직임에 따라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히 의류 기획부터 생산·유통까지 모든 단계를 한 회사가 직접 맡는 SPA 브랜드라면 옷의 수명을 늘리는데 더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을 텐데요, 글로벌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유니클로는 2020년부터 옷을 통한 순환 경제를 실험하는 ‘리유니클로(RE.UNIQLO)’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올해 프로젝트 5주년을 맞아 어떤 성과와 의미가 있었는지 소개하는 자리에 비크닉을 초대했는데요. 일본 현지에서 만난 생생한 현장을 전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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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오페라 매장에 위치한 리유니클로 스튜디오 전경. 사진 유니클로

‘옷의 힘’으로 세상 바꾸는 선순환 모델 만든다

유니클로는 전 세계 250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거대 글로벌 회사예요. 이미 2015년 해외 매장 수가 일본 내 매장 수를 앞섰죠. 실제로 도쿄 롯폰기 사무실에서는 다국적 직원들이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업무를 하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습니다.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 게리 콘웨이 매니저는 “1984년 히로시마의 작은 옷 가게로 시작한 유니클로는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라면서 “라이프웨어(LifeWear)의 ‘모든 사람을 위한 옷’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지속가능성과 결합해 재정의했다”고 리유니클로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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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유니클로의 선순환 사업 모델. 나비 날개 모양을 닮아 '버터플라이 모델'이라고도 부른다. 사진 유니클로

‘버터플라이 모델’로 불리는 선순환 모델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나비 날개 모양의 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기존 산업이 왼쪽 날개의 생산·판매에 그쳤다면, 지금은 오른쪽 날개에 표기한 것처럼 판매 이후 옷의 여정(회수·재활용·재사용)을 관리하겠다는 거죠. 리유니클로의 주요 활동은 4가지입니다. 수선(Repair)·자수(Remake)·재사용(Reuse)·재활용(Recycle)인데요. 유니클로 매장에 비치한 수거함,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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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몰의 유니클로 매장 및 리유니클로스튜디오 전경. 오른쪽은 라이프웨어에 대해 설명하는 패스트리테일링 홍보실 게리 콘웨이 매니저. 사진 유니클로

모인 옷은 분류를 통해 입을 수 있는 옷과 아닌 것으로 나뉩니다. 재사용할 수 있는 옷은 난민 캠프에 기부하거나 클리닝 및 염색 전문 업체를 거쳐 중고 의류로 판매돼요. 다운 재킷은 소재만 추출해 리사이클 옷으로 새 생명을 얻고요. 입을 수 없는 옷은 단열재·방음재로 재활용됩니다. 한국 유니클로에서는 모인 헌 옷을 국내 취약계층 시설에 기부하고, 입을 수 없는 옷은 섬유 패널로 가공한 뒤 업사이클링 가구로 만들어 아동 양육시설에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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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서비스를 적용한 라운드 미니백. 사진 유니클로

즐거워야 오래 쓴다…고쳐 쓰는 재미에 주목하다

사실 유니클로는 이미 20년 전부터 못 입는 후리스를 수거해 재활용하거나 난민 기구에 옷을 기부하는 활동을 해왔어요. 하지만 새로울 것 없는 재활용 시장에서 변화를 준 건 DIY 아이디어였습니다. 22개국 59개 매장에서 운영되고 있는 ‘리유니클로 스튜디오’는 수선 및 자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배경에는 ‘왜 사람들이 옷을 버리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대요. 본사 서스테이너빌리티팀 히로미 이시하라 매니저는 “첫째는 파손이나 수축 혹은 오염 같은 물리적 이유고 둘째는 트렌드가 바뀌었거나 싫증이 나는 등 심리적인 이유”라고 설명하면서, 고객들이 옷을 좀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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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손상이 있는 옷은 사시코 자수 수선을 통해 나만의 옷으로 재탄생한다. 사진 유니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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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매장 중 하나인 세타가야 치토세다이점은 중고 의류 판매 코너를 운영중이다. 사진 유니클로

자수 서비스는 약 100종의 템플릿 중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어 나만의 옷이나 가방을 꾸미려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지점마다 지역 특색을 반영한 한정판 디자인을 구비해 매장을 찾아다니는 숨은 재미도 있어요. 일본 전통 자수 기법인 사시코(Sashiko)는 한 뼘 정도 작업에 십만 원이 넘을 정도지만, 작업이 한 달 정도 밀려 있을 만큼 인기예요. 일본 내 3곳의 매장에서는 ‘중고 의류 판매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세타가야 치토세다이점에는 90년대 발매된 셔츠가 새것처럼 관리되어 매대에 놓여있어요. 옷 상태에 따라 세척 및 재염색을 거치며 중고의류 최초로 효소를 이용한 ‘엔자임 세척’ 기술을 적용한 옷도 있습니다. 희귀템인 ‘올드 유니클로’나 색다른 염색 의상을 찾는 패션 피플들이 보물찾기하듯 ‘득템’할 수 있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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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아리아케에 위치한 유니클로 본사.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 산하의 여러 브랜드 사무실은 물론 유니클로 주요 조직이 모두 모인 '올인원' 전략 기지다. 사진 유니클로

생산 줄었는데 매출 늘었다? 유니클로가 고객 피드백에 목숨 거는 이유

유니클로 본사는 도쿄의 첨단 시설이 밀집한 아리아케에 있습니다. 1층부터 4층까지 물류센터, 5층은 아뜰리에·포토스튜디오·기상시뮬레이션챔버 및 패스트리테일링 산하의 브랜드 사무실이 있고요. ‘유니클로 시티’로 이름 붙은 6층은 1만8750㎡(약 5668평)규모로 2000여 명의 직원을 수용하고 있죠. 2017년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주요 조직을 모두 합쳤다고 하는데요. 이유는 고객 피드백을 각 조직에 빨리 전달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제품에 반영하기 위해서예요. 사내에서는 ‘아리아케 프로젝트’라고 불러요. 개방형 사무실 곳곳에서 각 파트 직원들이 열띤 회의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어요. 고객 센터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면, 각 제품 담당자나 마케팅 파트에 전달되고 4층에 있는 아뜰리에에서 바로 샘플을 제작해 볼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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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시티'로 명명한 본사는 기능에 따라 업타운·미들타운·다운타운으로 구역을 나눌 정도로 대규모를 자랑한다. 중간에는 전문 큐레이터가 상주하는 도서관 겸 카페가 있다. 사진 유니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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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기후와 온도, 습도에 따른 원단의 변화와 사람이 느끼는 쾌적함을 실험할 수 있는 기상 시뮬레이션 챔버. (오) 시제품 제작과 제품 디자인의 업그레이드를 담당하는 아뜰리에. 사진 유니클로

핵심은 고객 피드백 데이터로 정확한 판매량과 유통량을 예측하는 건데요. 지난해에만 3140만 건의 데이터를 수집 및 분석했어요. 본사 담당자에 따르면 아리아케 프로젝트를 실행한 이후, 매출이 70%나 상승했지만, 생산은 20%밖에 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획부터 제작·마케팅·판매·재고관리·운송까지 효율적으로 운영한 결과죠. ‘생산을 줄이는(Reduce)’ 것 역시 지속가능성 목표를 위한 거예요.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은 2030년까지 자사 운영시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90% 이상 삭감하고, 원재료의 50%를 리사이클 소재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소재로 전환을 목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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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이 공장 창고에 적재된 울트라라이트다운재킷. 사진 유니클로

한해 8만 벌 다운재킷 뜯어내는 공장

히트텍은 명실상부 유니클로의 히트 아이템인데요. 이 성공에는 세계 최대 섬유·소재 회사 도레이와의 파트너십이 있었습니다. 1926년 설립된 도레이는 섬유뿐 아니라 탄소섬유부터 나노 테크놀로지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회사예요. 2006년부터 유니클로와 다양한 협업을 하고 있죠. 시가 현에 위치한 도레이 세타 공장에서 다운재킷을 재활용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리사이클 산업의 어려움은 소재를 쓸만하게 가공하거나 조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곳에서는 2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세계 최초 깃털 분리 장치 기술을 만들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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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다운 재킷은 절단과 분류 작업을 거쳐 깃털만 추출된다. 사진 유니클로

일본 전역에서 모인 다운 재킷을 기계에 넣으니 사각형 모양으로 일정하게 자른 뒤 공기 유압장치를 통해 깃털만 완벽하게 분리해 냈습니다. 옷 10벌가량을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5분. 예전에는 수작업이라 오래 걸리고, 작업자의 호흡 건강에도 좋지 않았다고 해요. 도레이 소속 엔지니어 나오키 오카는 “깃털에 손상을 주지 않고 90% 이상 분리해 내는 것이 기술”이라고 강조했어요. 현재는 일본 전역에서 모인 다운재킷을 연간 8만 벌 재활용하고 있죠. 이렇게 모인 다운 깃털은 압축해서 멸균한 뒤 세척해서 리사이클 다운재킷으로 만듭니다. 지금까지 150만장의 다운 재킷이 새 생명을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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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 위치한 UN파빌리온. 사진 비크닉

마지막 행선지는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입니다. UN 파빌리온 직원 모두 유니클로가 지원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어요. 유니클로는 2006년부터 유엔난민기구와 협력해 전 세계 난민에게 의류를 지원하는 한편, 난민 자립 프로그램이나 매장 내 난민 고용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2022년부터 시작한 ‘피스 포 올(Peace for All)’ 프로젝트는 한정판 디자인 티셔츠의 판매 금액 20%를 국제 구호 기구에 기부합니다. 올해 초까지 660만장을 판매해 약 185억원 이상의 기금을 모았죠. 유니클로의 서스테이너빌리티 여정, 어떠셨나요.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으로서 옷에 대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이 행보가 어떤 결실을 보여줄지, 어디까지 이어질지 한번 지켜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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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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