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수마로 초토화된 산청…"산불 이어 물난리, 무서워서 우째사노"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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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인해 지난 19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한 도로에 산사태가 발생, 돌과 나무 등이 깔려 있다. 연합뉴스
“둑 터져 축사 휩쓸어”…연락 끊긴 남편에 애탄 아내
경남 산청군에 역대급 수마(水魔)가 덮친 지난 19일, 송모(60대·여)씨는 중앙일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말했다. 산청 신안면 양천강변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남편이 점심(낮 12시쯤)부터 연락이 닿지 않아서다. 송씨는 “처음엔 소똥 치운다고 비 오는지도 모리는갑다(모르나보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근 다른 축사 농장주와 통화한 뒤 상황은 급변했다. “둑이 터져서 여기 소(牛) 다 떠내려갔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송씨는 “나중엔 전화 신호마저 끊기고, 관공서마저 통화가 잘 안 돼 애가 탔다”고 했다.
산청에선 기지국 침수 등 문제로 이날 오후 내내 휴대전화가 거의 먹통이 되다시피 했다. 경남 진주시 자택에 있던 송씨는 남편을 찾아 아들과 함께 산청 축사로 향했다. 그런데 축사로 가는 길도 막혔다. 도로 곳곳이 침수된 탓이었다. 강 건너편 고지대에서 물에 잠긴 축사를 보던 송씨는 “애가 타 미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경찰에 남편 실종 신고까지 했다. 다행히 남편은 축협 직원이 ‘급히 대피하라’고 해서 몸을 피한 뒤였다고 한다.

지난 19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양천강으로 떠내려 온 소를 마을 주민들이 건져내려 준비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이를 모르던 송씨가 남편을 만난 건 오후 4시 반이 넘어서다. 빗줄기가 다소 약해지자 남편이 차를 움직여 이동하던 중 통제 중이던 길목에서 만난 것이다. 송씨는 “멀리서 신랑 차 같은 게 오는데 운전자 옷을 보니 신랑인기라, 차 넘버도 신랑 차였다”면서 “보자마자 ‘아이고 아이고’ ‘사람 살았으면 됐다’ 싶었다. 소 50마리, 그 머시기라고”라며 안심했다고 전했다.
통신·전기 끊기고 도로 막혀…“원시 시대냐”
이처럼 전날 오후 산청에선 송씨 부부처럼 애간장을 녹인 주민들이 많았다. 폭우로 쏟아진 흙더미와 불어난 물에 도로 곳곳이 막히고, 정전·통신장애까지 발생하면서 사실상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기 때문이다. 도로 침수로 갓길에 정차 중이던 박모(50대)씨는 “전화가 안 트지노(터지냐). 원시 시대도 아니고, 우짜면 좋노(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답답해 했다.

지난 19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단성IC 인근 로터리에서 차 운전자들이 한국도로공사 직원에게 '고속도로 진입해도 되는지' 묻고 있다. 안대훈 기자
이날 오후 전기가 끊긴 산청 단성·신안·신등·금서면에서 신호등도 먹통이었다. 단성면의 한 삼거리에선 신호등 꺼진 도로 위를 수많은 자동차가 비상등을 켠 채 거북이 걸음을 했다. 이날 오후 7시가 넘어서도 이곳 신호등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와중에 이날 오후 2시쯤부터 산청을 지나는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비탈면 붕괴로 양방향 통제되자, 단성IC를 통해 고속도로 차들이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국도 역시 막힌 곳이 많아, 이들 차들은 우회로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기 바빴다. 단성IC 근처에서 만난 김모(50대)씨는 “(경남) 거제에서 일하다 내일·모레 휴가여서 가족 있는 경기도로 가려고 고속도로를 탔는데 여기서 막혔다”며 “산청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길을 찾으려 했는데, 완전 무너진 길로 들어갔다가 식겁하고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실제 산청군과 다른 지역을 오가는 주요 교통로인 국도 3호선(양방향 4차선)이 19일 산사태 등으로 막히면서 이틀째 차량 통행이 전면 차단되고 있다. 국도 3호선 진주시∼산청군 구간(산청대로)은 산청군을 지나는 대전∼통영 고속도로와 함께 산청군을 외부와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다. 진주시∼산청군을 오가는 직통 구간이어서 교통량이 많은 구간이기도 하다. 도로 옆 산에서 쏟아진 토사, 나무가 국도 3호선 산청군∼진주시를 연결하는 구간 여러 곳을 뒤덮은 상태다. 진주국토관리사무소가 대부분 구간을 응급 복구했으나, 산청군 신안면 경호강 휴게소 근처 국도 3호선 구간 토사 제거 작업이 늦어지면서 20일 오전까지 도로 전체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특히 복구 중에도 산에서 토사가 계속 밀려 내려와 개통이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주국토관리사무소는 20일 오후까지 산청∼진주 방향 왕복 2차로를 우선 개통한 뒤 양방향 교행하는 형태로 도로를 열겠다고 밝혔다.
전날 도로 비탈면 유실로 낮 동안 한때 통제된 통영대전고속도로 생초IC∼산청IC 구간은 현재 통행이 원활한 상태다.

지난 19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한 도로에 단성IC 방면에서 온 차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비탈면 유실로 양방향이 통제되면서다. 안대훈 기자
8명 사망·6명 실종…“산불에 이번엔 비, 우째 사노”
경남도에 따르면 20일 오전 9시 기준, 전날 산청에서 발생한 호우 피해 사망자는 8명, 실종자는 6명으로 파악됐다. 지금까지 경찰·소방·지자체에서 확인한 사망자는 산청읍 부리·내리, 단성면 방목리, 생비량면 가계리에서 발견됐다. 부리·내리에서 발견된 사망자 5명은 산사태로 주택 등이 무너지면서 숨졌다.
사고가 난 내리의 지성마을 강용호(63) 이장은 “오전부터 산사태로 발생하면서 돌이 마을로 떠내려왔다”며 “이 돌들이 물이 빠질 길목을 다 막으면서 화를 더 키웠던 것 같다”고 했다. 지성마을에서 구조된 박모(50대)씨는 “오전부터 도랑이 넘치니까 ‘큰일나겠다’ 싶어 집 밖에 피신해 있었다”며 “주민 5~6명이 마을로 올라온 소방 구조대 팔을 붙잡고 다같이 내려갔다”고 했다.

19일 극한호우가 퍼부은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의 한 임도에서 포크레인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제거하고 있다. 사진 독자
방목리에선 ‘집 일부가 떠내려 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구조대가 심정지 상태의 주민 1명을 발견했지만 이후 숨졌다. 나머지 실종된 1명은 여전히 수색 중이다. 가계리에선 침수됐다 물이 빠진 논 위에서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산청에 사는 문모(60대)씨는 “봄엔 불나서 난리더니, 여름엔 비 때문에 난리다. 아이고 무시버서(무서워서) 우째 사노”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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