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엡스타인 스캔들’ 수렁…“FBI에 트럼프 조사 촉구” 증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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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뉴욕의 부동산 사업가로 있던 1997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헤지펀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찍은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성년자 성접대 사건으로 체포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에는 과거 수사당국의 ‘엡스타인 파일’ 조사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 이름이 직접 거론된 적이 있다는 증언이 뉴욕타임스(NYT)에 보도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로 정확히 취임 6개월을 맞은 시점에서 최대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형국이다.

NYT는 이날 엡스타인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마리아 파머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파머가 1996년과 2006년 FBI에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더욱 광범위한 조사를 해달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파머는 1995~1996년 엡스타인에 고용돼 처음에는 미술품 구매 등 업무를 맡았지만 나중에는 그의 집 앞 출입구에서 소녀들, 젊은 여성들, 셀럽 인사들의 출입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1996년 여름 오하이오주의 엡스타인 별장에 머물던 당시 엡스타인과 그의 오랜 파트너인 기슬레인 맥스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트럼프 포함 광범위한 조사해야’ 진술”

NYT에 따르면, 파머는 1995년 엡스타인 사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마주쳤다고 수사 당국에 증언했다. 당시 20대이던 파머는어느 날 밤 엡스타인이 뉴욕 맨해튼의 고급 사무실로 갑자기 호출해 러닝팬츠 차림으로 그의 사무실로 갔다. 잠시 후 정장 차림의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했는데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자 무서워졌다고 파머는 말했다. 이후 엡스타인이 들어왔고 “이 사람은 당신을 위해 여기 온 게 아니다”고 말했다. 파머는 이후 트럼프와 별다른 접촉은 없었으며 그가 미성년자나 여성과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파머는 지난주 수사 당국에 진술한 내용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의 동료들이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파머는 엡스타인이 트럼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포함한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과정에서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을 노리는 패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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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제프리 엡스타인의 사진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엡스타인 스캔들과 관련된 파일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문구가 투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NYT “트럼프 문제될 내용 있을 가능성”

NYT는 “파머가 엡스타인과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 당국의 광범위한 조사를 촉구한 것은 사건 파일에 트럼프에게 수치스럽거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엡스타인 사건의 미공개 수사 파일에서 트럼프가 어떻게 거론됐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증거 중 하나”라고 짚었다.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대통령은 엡스타인 사무실에 간 적이 없다. 팩트는 대통령이 엡스타인을 불쾌한 사람으로 여겨 그의 클럽에서 쫓아냈다는 것”이라며 파머의 증언을 반박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수십 명을 비롯한 여성 다수를 정ㆍ재계 저명인사 성접대에 동원했다는 혐의로 2019년 기소돼 재판이 시작되기 전 교도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이른바 ‘엡스파인 리스트’를 은폐하기 위한 타살설이 제기되는 등 음모론이 잦아들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마가(MAGA 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보이지 않는 엘리트 집단을 지칭하는 ‘딥 스테이트’가 엡스타인의 성접대 리스트와 사건 은폐에 연루됐다고 의심하며 수사기록 전면 공개를 요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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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헤지펀드 억만장자였던 제프리 엡스타인이 2017년 3월 28일(현지시간) 뉴욕주 형사사법 당국의 성범죄자 등록 과정에서 찍힌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마가 진영 일부와 트럼프 대통령의 갈등이 첨예화하는 양상이다. 지난 7일 미 법무부가 “엡스타인 고객 명단은 존재하지 않으며, 엡스타인의 사망은 자살이 맞다”고 발표하자 마가 일부에서는 ‘사건 은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의 옛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사기극에 넘어갔다”(16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003년 엡스타인에게 50세 생일 축하 편지와 함께 외설적인 그림을 함께 보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난 17일 보도가 다시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기사를 보도한 WSJ 기자와 WSJ 모기업 뉴스코퍼레이션그룹, 해당 그룹을 소유한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명예회장 등을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 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내며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WSJ 기사 막으려 직접 전화”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과 달리 그의 그림 몇 점이 경매를 통해 판매됐다는 기사가 NYT에서 보도됐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WSJ의 해당 보도를 막기 위해 지난 15일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에마 터커 WSJ 편집인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를 내보내지 말라고 요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는 보도가 20일 영국 텔레그래프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에도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자신에게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을 해임하는 것인 시장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WSJ의 전날 보도에 대해 “전형적인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머독 명예회장이 보유한 WSJ과 폭스뉴스는 친트럼프 성향의 논조를 보여온 보수 성향 매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우군 세력인 마가 진영과 보수 언론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미 89% “엡스타인 정보 전면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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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시민들이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과 관련된 문서의 공개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며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론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미 CBS 방송이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에 의뢰해 16~18일 성인 23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0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는 트럼프 행정부가 엡스타인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불만족’을 표했다. 응답자의 압도적 다수인 89%는 ‘법무부가 엡스타인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2016년 성추문 테이프, 그리고 지난해 성인배우성추문 폭로 입막음 사건을 겪고도 두 번 다 대선에서 승리했다”며 “그럼에도 엡스타인 스캔들이 계속 대중의 관심을 끌면 대통령 지지율이 이미 하락세에 접어든 시점에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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