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원들은 각목으로 흙더미 찔러야했다…실종자 수색 장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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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남 산청군 모고리 모고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실종자를 찾으려고 나무 각목을 들고 흙더미를 파헤치고 있다. 지난 19일 역대급 폭우로 이 마을에선 70대 남성이 토사에 휩쓸려 실종됐다. 안대훈 기자

푹, 푹, 푹…. 
21일 오전 7시쯤 경남 산청군 산청읍 모고마을. 탐침봉과 갈퀴, 삽 등을 든 소방대원 20여명이 발목 위로 쌓인 흙더미를 파헤치고 있었다. 마을 아래 논밭과 약 500m 떨어진 하천에 투입된 20여명의 소방대원도 마찬가지였다. 탐침봉 등 정식 장비마저 없는 대원들은 긴 각목과 대나무 작대기를 손에 쥔 채 구슬땀을 흘렸다. 이틀 전(19일) 수마(水魔)로 실종된 70대 남성을 찾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만난 소방대원은 “산청에 동시다발적으로 수해가 발생하다 보니 장비가 부족해 나무 막대기까지 써서 수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80여명이 사는 이 마을의 비교적 젊은 50~60대 주민 10여명도 수색을 거들었다. 앞서 수색을 돕던 박인수(61) 모고마을 이장은 “다리가 푹푹 빠지니 오른쪽 종아리에 피부병이 생길 정도”라고 했다. 지난 19일 내린 역대급 폭우로 이 마을은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토사와 바위, 건물 잔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토사가 휩쓸고 간 마을 아래쪽에는 망가진 경운기 1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했다. 이런 잔해 속에 실종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박 이장은 “오전 11시 50분쯤 산사태가 나기 전에 어르신(실종자)은 아내분과 함께 마을회관에 대피했었다”며 “그러다 잠시 집에 다녀오시겠다고 나간 지 10여 분 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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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남 산청군 모고리 모고마을 아래 논밭에서 한 소방대원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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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남 산청군 모고리 모고마을 실종자 수색현장에서 만난 박인수 이장이 빨간 두드러기가 난 종아리를 내보이고 있다. 안대훈 기자

“동시다발 현장에 수색장비도 부족”   

이날 경남 산청에선 실종자 4명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한창이었다. 산청군통합지휘본부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실종자가 1명씩 발생한 산청읍 모고리(70대 남성), 단성면 방목리(60대 남성), 신등면 율현리(80대 남성), 신안면 외송리(80대 남성) 일대에선 수색 지역별로 35명~50명씩 소방대원 172명, 그리고 경찰 329명 등이 투입돼 수색 중이다. 이들 실종자는 폭우로 쏟아진 토사 등에 휩쓸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수색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실종 추정 지역에서 실종자가 사흘째 발견되지 않아, 수색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다. 게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토사와 수목 등 부유물, 바위를 제거하려고 굴삭기 등 중장비도 투입해야 하는 탓에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에 수색 당국은 열화상 드론을 띄우고, 수색견도 투입 중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동원 가능한 인력을 모두 투입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실종자를 모두 찾길 모두 바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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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남 산청군 모고리 모고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준비 중이다.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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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남 산청군 모고리 모고마을 아래 하천에서 소방대원들이 흩어져 실종자를 찾고 있다. 지난 19일 역대급 폭우로 이 마을에선 70대 남성이 토사에 휩쓸려 실종됐다. 안대훈 기자

이번 호우로 현재까지 산청에서 확인된 호우 피해 관련 사망자는 10명이다. 전날 오전까지 8명이었지만, 실종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2명 더 늘었다.

무너진 도로도 아직…1344가구 전기도 안 들어와

복구도 더디다. 특히 도로 등 주요 기반 시설이 붕괴되면서 주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산청읍에서 차황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친황경로’ 약 4㎞ 구간 중 일부는 아스팔트 포장이 붕괴되고, 그 아래 지반마저 유실된 상태다. 산청 신안면에서 산청읍으로 가는 국도 3호선 신안면 외송리 구간도 낙석과 토사 탓에 통행이 막히면서 산청읍으로 가려면 고속도로로 우회해서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포함 도로 27개 구간이 복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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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산청읍 친환경로길이 지난 호우로 붕괴된 모습. 사진 독자

심지어 현재 산청 38개 마을 1344가구는 여전히 단전 상태다. 현재까지 주택 253동, 딸기·바나나·벼·콩 등 농작물 침수 320㏊ 등 공공·사유시설 피해만 135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19일 호우 피해가 발생한 지 사흘째지만, 아직 360가구 517명은 여전히 임시대피시설에 머물며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이날 도로·전기·통신 등 주요 기반 시설의 신속한 복구를 주문했다.

학교 피해도 컸다. 경남 최초 간호전문 특성화고로, 산청 생비량면에 있는 ‘경남간호고’는 기숙사와 급식실, 기숙사, 운동장 등이 침수돼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직원 20여명이 이날 출근해 시설을 점검하고, 용역업체 직원 10명을 불러 바닥부터 천장까지 진흙탕이 된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또 단성초, 도산초, 단성중, 신등고, 간디고 역시 비 피해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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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생비량면에 있는 경남간호고 급식실이 비 피해로 진흙탕이 된 모습. 사진 경남간호고

‘괴물 폭우’ 전국서 18명 숨지고 9명 실종돼

한편, 행정안전부의 국민안전관리 일일상황보고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기준 최근 전국에 쏟아진 극한 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18명, 실종자는 9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산청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가평과 충남 서산에서 각각 2명, 경기도 오산·포천, 충남 당진, 광주 북구에서 각각 1명씩 사망자가 나왔다. 가평에선 산사태와 갑자기 불어난 물에 인명 피해가 커졌고, 오산에선 옹벽이 무너져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종자는 가평과 산청에서 각각 4명, 광주 북구에서 1명이 나와, 수색 당국이 찾고 있다.

이번 극한 호우 피해로 일시 대피한 주민은 15개 시·도 9887가구, 1만4166명으로 집계됐다. 또 전날 오후 6시 기준 도로침수와 하천시설 붕괴 등 공공시설 피해는 1999건, 건축물·농경지 침수 등 사유시설 피해는 2238건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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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도 가평군 수해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한 농가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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