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우승 덧없다”던 셰플러, 디 오픈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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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오픈 챔피언십을 제패한 뒤 두 팔을 활짝 펴 자축하는 셰플러. 개인 통산 17번째이자 메이저 대회 기준으로는 4번째 우승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남자골프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29·미국)가 21일(한국시간) 영국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에서 끝난 제153회 디 오픈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3언더파, 합계 17언더파를 기록해 2위 해리스 잉글리시(미국)를 4타 차로 제쳤다. 셰플러는 시즌 4승, 메이저 통산 4승을 거뒀다. 마스터스(2회), 디 오픈,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그는 US오픈만 더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다.

셰플러는 이날 2위에 4타 앞선 선두로 출발했다.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선수라서 손쉬운 우승이 예상됐는데, 예상보다도 더 쉬웠다. 4번 홀 직후 2위와 7타 차까지 벌어졌다. “초반 점수를 줄여 관중의 환호를 유도해 셰플러를 흔들겠다”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작전은 부질없었다. 입스에서 벗어나 이번 대회에서 ‘불꽃 샷’을 날린 리하오통(중국)도 셰플러 옆에선 힘을 못 썼다.

8번 홀(파4) 페어웨이 벙커에서 친 샷이 턱에 맞고 다시 빠져 셰플러는 더블보기를 했다. 2위와 격차가 4타로 좁혀지면서 작은 긴장감이 생겼지만, 셰플러는 이조차 9번 홀 버디로 지워버렸다. 셰플러의 타수 이득은 아이언 +9.1(1위), 퍼트 +8.5(2위)였다. 아이언을 가장 가깝게 붙이면서 퍼트를 두 번째로 잘하는 선수를 이길 수는 없다. 경기는 철학 강의처럼 다소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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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는 개막 전부터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처졌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셰플러는 뜬금없이 “‘나는 왜 이토록 간절히 이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을까’라는 질문과 매일 싸운다. 우승의 기쁨은 2분밖에 안 가더라. 내가 골프에서 해낸 것들이 성취감을 주지만, 마음 깊은 곳 갈망은 채우지 못한다. 때로는 우승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인생은 골프공보다 크다”고 말했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세계 1위의 고백은 놀라웠다.

앞서 매킬로이도 올해 마스터스 우승 후 목표를 잃고 방황했기 때문에 셰플러 발언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 많은 스포츠 스타가 비슷한 경우를 보였다. 테니스 스타 앤드리 애거시는 “테니스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지 못한다”고, 미국프로농구(NBA) 전설 빌 러셀은 “우리가 공 하나를 두고 싸우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라고 했다. 그렇다고 셰플러가 이들처럼 시니컬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으로 압박감을 줄여 더 좋은 성적을 냈을 수도 있다.

셰플러는 이날 ‘덧없는’ 17번째 우승컵과 ‘덧없는’ 우승 상금 310만 달러(약 43억2000만원)를 챙겼다. 이로써 그의 통산 공식 상금은 9000만 달러(약 1248억원)가 넘었다. 지난해부터 셰플러는 타이거 우즈급이다. 플레이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통계는 비슷하다. 그는 “우즈와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별 드라마 없이 안정적으로 활약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셰플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디 오픈 우승이 정말 멋진 일이고 집에 가서 축하하겠지만, 결국 골프든 직장이든 인생에서 성공만으로는 깊은 마음속 욕망을 채울 수 없다”고 말했다. 2025년 디 오픈은 고뇌하는 철학자의 우승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편, 지난 5월 PGA 챔피언십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잉글리시가 2위를 했다. 매킬로이는 공동 7위(10언더파), 임성재는 공동 52위(이븐파)로 대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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