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행은 내 경계 확인하는 경험"…휠체어 타고 세계 누빈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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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국민 휴가철인 ‘7말 8초’다. 모두 여행 준비에 분주하지만, 선뜻 먼 길을 나서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장애인들이다. 하지만 김지우(24)씨는 다르다. 그는 “그냥 해보라”고 한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해봐야 알 수 있다”고.

김씨는 뇌병변으로 휠체어를 타는 서울대생이자,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 9년째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 중인 유튜버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첫 여행 에세이집(『의심하지 않는 마음』·푸른숲)을 냈다. 호주 바닷가에서 서핑하고, 휠체어 타고 스위스 융프라우에 오른 경험 등을 담았다.

'의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다음 달 또 여행을 준비 중인 그를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구르님에게 여행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내 바운더리(boundary, 경계)가 어디인지 알아가는 것. 책에 ‘(스무 살 때 혼자) 지하철 탔던 게 첫 여행’이라고 썼는데, 여행을 하다 보면 ‘어, 내가 이것도 할 수 있네, 저것도 할 수 있네’ 하며 점점 경계가 넓어지잖아요. 내 경계를 확인하고, 어느 순간 그걸 넘는 것, 그게 여행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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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고 '유럽의 지붕' 스위스 융프라우 전망대에 오른 김지우씨. 지난 2023년 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김지우]


-두 번째 의미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아가는 거요. 어릴 때 어른들이 ‘너는 이상한 게 아니고 특별한 거다’라고 말씀해주셨고,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한데 어느 순간 그것도 또 다른 편견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에 대해 억지로 긍정적인 의미를 붙여 (내 정체성을) 굳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데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면 내가 휠체어를 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사람, 평범한 관광객이 되죠. 그런 경험이 없었다 보니 오히려 해방감이 들더라고요.”

-책에도 장애를 보기 좋게 포장하는 대신 ‘사실 장애인으로 살면 안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하며 후련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를 표현하다 보면 두 감정이 다 나올 수밖에 없어요. 장애인을 다룬 콘텐트에선 장애를 종종 도구적으로 이용해요. (주로) 슬픈 상황에. 그래서 ‘나는 (장애인이지만)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콘텐트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 지쳤어’ ‘나 힘들어’란 말을 할 수 없었죠. 항상 긍정적으로만. 근데 사실 늘 그렇지는 않잖아요. 저는 장애인이기도 하지만 20대 여성이기도 해요. 당연히 방황하고, 실패하고, 남자친구랑 여행하고, 이런 것들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작들에서 ‘휠체어를 탄 삶’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에선 그냥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 여행하는 나에 대해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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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독일 여행 중인 대학생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 김지우씨. [사진 김지우]

-유럽·호주 여행기를 썼다. 유튜브를 보니 책을 쓴 뒤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왔던데, 미국은 어땠나
“미 국무부가 교환학생을 임의 배정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그래도 휠체어를 타니까, 좀 좋은 데로 보내줄 줄 알았어요. 신청서에도 교통 편하고 날씨 좋은 곳에 가고 싶다고 썼는데, 가차 없이 시골로 보내더라고요. 인디애나주 먼시라고, 인디애나 공항에서 버스 타고 2시간 반을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한국인 친구는 한 명도 없고 아시아인도 얼마 없는, 정말 ‘백인 시골’. 좋은 게 하나 있다면 광활한 옥수수밭에 지어진 학교라, 전부 (휠체어 타고 이동하기 좋은) 평지라는 것 정도?”

-영상에 대해 교수님께 칭찬 받는 내용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듣고 다큐 영상을 만들어 보냈는데, 교수님께서 ‘너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라는 이메일을 보내 주셨어요. ‘(장애인이라) 미국 생활 힘들 텐데, 이런 걸 만들다니 장하다’ 이런 얘기는 단 한 문장도 없었어요. 성적도 좋고 학교생활도 잘한 편이어서, (예전에도) 선생님 칭찬 듣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는데, 무의식중에 하시는 말씀이 ‘지우는 몸이 불편한데 참 대단하다’ 그런 거였어요. 그것도 나름 감사한 말씀이지만 ‘내가 진짜 잘하는 게 아니고, 장애가 있는 것 치고는 잘한다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있었죠. 근데 교수님 이메일을 받고 ‘아, 그냥 내 능력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네’ 생각하게 됐죠. 그 경험이 되게 좋았어요.”

-다음 달 또 미국에 간다고
“LA에 가요.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장애 학생들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선발됐거든요. 시각장애 유튜버 허우령·양주혜 씨랑 같이 가서, 현지 장애인 크리에이터들 인터뷰할 예정이에요. 막 섭외를 다 했는데, 제가 다른 분들 통역을 해야 하거든요.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통역할 수준은 아니어서,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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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 중 멜버른 미드섬마 페스티벌에 참가한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 김지우씨. [사진 김지우]

-책 제목이 ‘의심 없는 마음’이다. ‘내가 환영받을 수 있을까’ 의심하는 장애인, ‘장애인이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비장애인에게 한마디 한다면.
“그들 모두에게 ‘그냥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진짜 그냥 해보라고. 왜냐면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저도 제 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거든요. 그 경계를 확인하려면 머리로만 생각해선 절대 답이 나오지 않아요. 해본다고 하면 그냥 ‘해보라’고 하시면 돼요. 그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그 사람이 제일 잘 아니까, 그냥 내버려 두고,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도와주세요.”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나
“궁금하면 그냥 물어보세요. 저도 장애인이지만 다른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서, (다른) 장애인이 어려워요. 근데 그건 장애 유무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갑자기 만나면 그렇게 어려운 게 당연한 거잖아요. 그럼 물어봐야죠. 제가 이번에 시각장애 언니들이랑 미국을 가는데, 제가 만약 ‘아, 저 언니는 눈이 안 보이니까 내가 이걸 다 해줘야지’한다면 서로 불편해지겠죠. 그래서 전 물어봐요. 가령 둘 다 안내견이 있는데, ‘언니, 내가 주인이 아닌데 (안내견에게) 이렇게 해도 돼?’ 하고 물어보죠. 그럴 때 ‘이런 상황에선 해도 되고, 이런 상황에서는 안 하는 게 나아’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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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9년차 대학생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 김지우씨. [사진 김지우]

-개인적인 질문인데, 졸업 후 계획은
“졸업을 미루고 있어요. 1년 정도 더 다니고 할 것 같아요. 이후 계획은 계속 고민 중이에요. 여느 20대와 같이. 저는 (졸업 후 무슨 일을 하든) ‘나 이렇게 살고 있어요’ 하고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어릴 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커서 뭐가 되나 궁금했는데, 그런 정보가 정말 없었어요. 다큐를 봐도 ‘후원이 필요하다’ 이런 것만 나오니까 되게 막막하고, 어른이 된 나를 상상하기 힘들었죠. 지금 휠체어를 탄 어린이들도 그럴 텐데 ‘이런 사례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일은 다른 걸 할 수도 있겠죠. 운이 따라준다면 미국에 가서 대학원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트럼프 재집권 후) 지금 너무 혼란한 상황이라 어찌 될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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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씨의 첫 여행 에세이집 『의심 없는 마음』 [사진 푸른숲]

-마지막으로 '의심 없이' 가볼 만한 여행지를 한곳만 추천한다면
“지금은 (현지가) 겨울이라 좀 애매하지만, 호주요. 제가 경험한 서핑도 그렇고, 거기 분들은 다들 ‘너 어디까지 할 수 있어? 그럼 거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내가 커버해줄게. 한번 해보자’ 그래요. 그러니 가셔서 액티비티, 몸 쓰는 일을 많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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