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찬 가짓수가 되레 발목…골목 백반집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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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던 박모씨는 지난 4월 17년간 운영했던 가게를 접었다. 동네에선 찌개와 계란말이가 맛있기로 유명했지만 갈수록 재료비 부담이 커져서다. 박씨는 “백반집 특성상 단골이 많은데 재료비가 올랐다고 매번 밥값을 따라 올리기가 미안했다”며 “많이 남는 장사도 아닌데 계속 나이는 들고 점차 의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백반집 등 한식 전문 식당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2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 중 한식당 비중은 2018년 45.6%에서 매년 줄어 지난해 41.8%까지 낮아졌다. 한식이 빠진 자리는 중식(3.5→3.9%), 일식(1.5→2.6%), 서양식(1.7→2.4%) 등이 채웠다. 피자·햄버거·샌드위치 및 유사 음식점(2.4→3.5%)도 늘었다.

이는 사업주의 고령화 추세와도 관련이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한식업의 사업주 평균 연령은 지난해 기준 56.2세로 전체 평균(52.9세)보다 높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일수록 조리 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도 센 한식보다는 다른 요식업 창업을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급등한 식자재값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곳도 반찬 가짓수가 많고 밥값은 비교적 저렴한 백반집이다. 농식품부 외식업체 경영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식당의 매출 대비 식재료 및 인건비 비율은 71.1%로 평균(69.8%)을 웃돌았다.

최근 농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발간한 ‘2024 한식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한식 음식점업과 주점업의 영업비용 절반 이상(54.3%)은 식재료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식재료 가격 상승세는 이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쌀 20㎏ 가격은 5만9641원으로 1년 전보다 13.4% 올랐다. 배추 1포기는 5240원, 깻잎(100g)은 2701원으로 전월 대비 각각 44.71%, 10.97% 값이 상승했다. 시금치(100g) 가격은 1969원으로 전월(898원)의 2배 이상 뛰었다.

배달 외식이 늘고 있지만 족발·찌개류 외 정통 한식은 외면받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각종 반찬·국 등의 포장이 번거로운 데다, 소비자에게도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식업체 10곳 중 3곳(31.7%)이 배달 앱을 이용하고 있는데, 한식당은 21.6%로 평균(25.6%)에도 못 미쳤다. 한식당은 ‘1일 평균 배달 수’가 아예 없다는 응답이 74.7%로 일반음식점 중 가장 높았다.

경쟁에서 밀린 영세 한식당이 사라지는 대신 한식의 프랜차이즈화는 빨라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외식업종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전년 대비 0.6% 감소했지만, 한식업종 브랜드 수는 전년(3556개) 대비 4.1% 증가한 3701개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그간 한식당에 대한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낮았던 만큼,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문정훈(푸드비즈니스랩 소장)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식재료를 비교적 저가에 공급받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한식점보다 가격·품질 등 여러 면에서 뒤처지기 쉽다”고 말했다. 최민지 농식품부 외식산업정책과장은 “한식 관련 외식업체나 프랜차이즈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한편, 영세한 한식당 업주들을 위해선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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