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쏟아진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사라진 ‘경영권 방어’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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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이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연달아 발의하며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자사주를 취득한 즉시 무조건 소각해야 한다는 ‘더 센’ 개정안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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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22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취득 즉시 소각하도록 규정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구체적으로 신규 자사주는 취득 즉시 소각하고, 법 시행 전 보유했던 자사주는 6개월 내에 소각해야 하는 내용이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15일 자사주 소각 기한을 ‘취득일로부터 3년 이내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으로 정한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유연성이 너무 크다’는 주식 투자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그러자 이번엔 더 강해진 상법 개정안을 새롭게 내놓은 것이다.

이 외에도 김남근(민주당) 의원은 1년 이내, 차규근(조국혁신당) 의원은 6개월 이내에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민병덕(민주당) 의원의 경우 유예기간을 1년으로 두되, 자사주 총수가 발행주식 총수의 3% 미만이면 2년으로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면 회사 주식 수가 줄어 주당 순이익이 증가한다”고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민주당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을 모아 처리하겠단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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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이들 법안 모두 ‘임직원 보상’ 등 특정 상황에는 자사주를 보유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는 있다. 하지만 재계는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데 자사주부터 무조건 소각해야 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포이즌필은 기존 주주나 제3자에게 시가보다 낮은 값에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주는 신주인수선택권이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주주의 지분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이 밖에 차등의결권(특정 주주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 부여), 황금주(주총 의결 사항에 거부권 행사)에 대한 요구도 나온다.

이에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포이즌필 도입,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이사나 임원이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경영 판단의 원칙’ 명문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최 의원은 “기업의 경영권이 흔들리면 장기적인 투자 전략과 경영 비전이 흔들리고, 이는 곧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외부 위협으로부터 기업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같은 당 김성원·구자근 의원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측에서도 포이즌필에 대해 ‘일부 보완’을 전제로 “긍정적인 측면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검토 보고서를 내놨다. 이은정 전문위원은 구자근 의원 안에 대해 “(포이즌필은) 큰 비용 들이지 않고서도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시도를 사전 차단해 안정적 기업 운영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보고서를 냈다. 다만 지배주주의 경영환경 보장에만 쓰이지 않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여당 설득 없이는 현실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기 쉽지 않다. 현재 여당은 배임죄 완화 외에, 추가적인 방어권 보장 요구는 “설득력이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이 포이즌필 등을 제도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민주당에서 “주주 평등의 원칙에 반하고 불법 경영 승계의 수단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해 무산됐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2011년 자사주 제도를 손질할 때부터 ‘포이즌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때는 ‘자사주로 방어하라’고 했었다”며 “이제 와선 자사주를 무조건 소각하라면서도 ‘방어 장치는 불필요하다’는 여당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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