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신 당일 DJ “이 일기를 단장의 심정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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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 기간 동안 쓴 ‘김대중 망명일기’의 원문이 수첩에 손글씨로 적혀 있다.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나는 이 일기를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마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며 헌법 기능의 일부를 정지시켰다. (중략) 참으로 청천벽력의 폭거요,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 처사이다.”

1972년 10월 17일, 훗날의 대통령이자 당시 야당 의원 김대중(1924~2009)이 쓴 일기다. 단장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가리킨다. 1971년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패했던 김대중은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었다. 곧바로 망명을 각오한 그는 같은 날 일기에 “서울의 집과 기적적으로 통화가 됐다. 나는 아내에게 본국에 당분간 돌아가지 않을 결심을 암시해 주었다”고 썼다.

박정희 정권이 자칭 ‘10월 유신’이라 부른 비상계엄 전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 시기에 쓴 일기가 반세기 만에 『김대중 망명일기』(한길사)로 발간됐다. 손글씨로 쓰인 일기는 수첩 여섯 권 분량. 1972년 8월 3일부터 1973년 5월 11일까지 223편이다. 이 수첩은 김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해 여름 동교동 자택에서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김 이사장은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정말 운 좋게 발견했다”고 22일 출간간담회에서 말했다.

한자와 영어·일어가 섞인 일기 내용은 출간에 앞서 전문가들의 판독·검토 작업을 거쳤다. 이날 간담회에서 박명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은 “당시 비상계엄의 의미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이 놀랍다”며 “박정희 정부의 위협과 감시에도 일관되게 타협하지 않고 민주주의, 자유, 국민의 편에서 투쟁하겠다는 것이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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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망명 시절 재일 동포 앞에서 강연하고 있는 모습.

“이미 예견한 대로 박정희씨의 영구집권을 위한 내용으로 충만돼 있으며 삼권을 완전히 장악한 초(超)독재의 헌법안이다. 이로써 불행히도 내가 작년 선거 당시 ‘이번에 실패하면 앞으로는 다시 국민의 손에 의한 정권교체의 기회는 없을 것이며 무서운 총통제의 시대가 올 것이다’고 한 그대로가 되고 말았다.”(1972년 10월 27일)

당시 남북 정권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예리한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에 가장 뜻밖인 것은 북한 측이 미리 내통하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같은 해 10월 22일), “남북적십자 평양회담이 열리고 북한에서도 남한과 보조를 맞춰 헌법 개정을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북 간 사태의 배후에 무엇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같은 해 10월 24일)

일기에는 한국의 상황, 미국과 일본에서 정치인·지식인·언론인 등을 만나고 강연·기고 등의 활동을 펼친 매일의 기록 등과 함께 가족과 동지를 생각하며 괴로운 심경,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기도, 스스로를 향한 다짐도 실려 있다. 책을 펴낸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굉장히 객관적인 서술과 이성적인 사태 인식의 한편에서 기도문에는 가슴에 타오르는 격정을 표현해 놓았다”며 “시적이고 문예적”이라고 말했다.

“운명대로 사는 수밖에 없겠지. 자기 소신대로 살다가 죽는 거지. (중략) 나는 조국과 나의 사랑하는 동포를 위해서 싸우다 쓰러진 패자는 될망정 독재와 불의 속에 영화를 누리는 승자의 길은 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역시 1972년 10월 17일 일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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