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무죄 구형 최말자씨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는 걸 인정해줘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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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이겼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때도 (판결이) 틀렸고, 지금도 (판결이) 틀렸다는 것을 검찰과 법원이 인정해줘서 감사합니다.”
재심 청구 5년 만에 검찰이 무죄를 구형한 23일 최말자(78)씨가 한국여성의전화를 통해 전한 소감이다. 최씨는 “실감 나지 않는다”며 “오는 9월 부산지법 선고가 나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2020년 5월 재심 청구 이후 최씨를 도왔던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을 때 무죄 구형을 기대했다”며 “검찰이 법정에서 사죄까지 한 것은 그동안 무던히도 애썼던 최 선생님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선생님은 재심 1심, 2심 모두 기각 판결이 나왔을 때도 낙담하지 않았다”며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이후에야 덤덤하게 ‘다행이다’고 말할 뿐이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최씨의 신념과 각오가 단단했다고 한다.
최씨는 입버릇처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를 겁박하는 수사기관이나 가해자를 옹호하는 법원의 관행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이를 바꾸려면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고 설명했다.
재심 청구 후 5년간 시민 서명지 7만6790장…“시민 응원 큰 힘”

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가 2023년 5월 3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심 청구 이후 최씨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건 가족과 시민들의 응원이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지난 5년간 시민에게 받은 서명지가 7만6790장에 달한다”며 “최 선생님이 재심 기각 이후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초졸이었던 최씨가 이런 결정을 이끌어낸 배경에는 2018년 불었던 미투 운동의 영향이 컸다.
1964년 5월 사건 발생 이후 6개월간 교도소에 구금된 뒤 집으로 돌아왔지만 반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집을 나와 지방에서 방을 구해 혼자 살았던 최씨는 얼마뒤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곧 이혼했다고 한다. 와이셔츠 공장과 노점상 등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활하던 최씨는 63살이 되던 2009년 만18세 이상 여성을 위한 2년제 중·고등학교에 입학해 만학도의 길을 걸으면서 사회 부조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9년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할 때 여성의 삶과 역사에 관한 내용을 졸업논문으로 쓰면서 1964년 자신이 겪었던 일도 함께 정리했다고 한다. 논문을 읽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지인이 말없이 최씨를 끌어안고 “우리 이 한을 풀자”는 말에 한국여성의전화 문을 두드린 게 재심 청구로 이어졌다.
5년 만에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자 최씨는 법정을 나서며 “이겼다”고 힘껏 외쳤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정의는 살아있다”며 “61년간 죄인으로 살아온 삶, 희망과 꿈이 있다면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을 만들어 달라고 두손 모아 빌겠다”고 당부했다. 김 소장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이 판결을 똑똑히 기억하고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뼈에 새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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