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760조 바치고 10%P 낮춘 이시바…관세 협상 뒤 더 거센 퇴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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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23일 ‘절반의 성공’을 거머쥐었다. 다음달 1일 예정된 상호관세(25%) 부과를 열흘 앞두고 미·일 관세 협상을 매듭지었다. 8차례 협상 끝의 타결이다. 이시바 총리의 측근으로 협상을 이끌어온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경제재생상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전격 방문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약 1시간 10분 회담을 나눈 뒤 극적으로 끌어낸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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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일 관세 협상 합의 소식을 알린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며 “지금까지 일본과 맺은 협의 중 가장 큰 규모”라며 타결을 전했다. 뒤이어 이시바 총리가 관저에서 두 차례 회견해 합의 내용을 밝혔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이시바 총리는 “필요에 따라 전화 회담, 대면 회담을 하겠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문 서명 등을 위한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였다.

이시바 총리는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미국과 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나라 가운데 상호관세 분야에서 “최대 인하폭을 얻어냈다”고 했다. 다음달 1일부터 부과될 예정인 상호관세(25%)를 현재 공표된 상호관세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인 15%로 내렸다. 또 일본의 기간산업인 자동차와 차량 부품에 대해서도 기존세율(2.5%)을 포함해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5500억 달러(약 760조원)의 대규모 대미 투자도 밝혔다. 직접적인 투자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반도체와 의약품은 물론, 철강과 조선, 주요광물, 항공·에너지, 인공지능(AI) 등 ‘경제안보’에서 중요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의 미국 투자를 통해 ‘강력한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을 구축한다는 의미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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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 항목에선 두 정상의 온도 차가 감지됐다. 이시바 총리가 투자와 관련해 “미·일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공급망”을 강조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은 미국에 5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이 중 90%의 이익은 미국이 받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알래스카 가스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합작 벤처’에 일본이 참여하고, 합의를 마칠 것이라고 설명한 데 반해 이시바 총리에게선 언급이 없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와 상호관세 등을 묶어 ‘패키지’로 협상하겠다고 별렀지만, 이번 합의 대상에서는 철강과 알루미늄이 빠졌다. 이시바 총리로선 반갑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도 남아있어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은 앞으로도 일본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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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 총리 관저에서 미국과의 관세협상 합의안을 설명하고 있다. 교도·AP=연합뉴스

심지어 엇나간 발표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다”며 언급한 농수산물 분야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자동차와 트럭, 쌀과 특정 농산물 등 무역을 개방한다”고 했지만, 이시바 총리는 “농산품을 포함해 일본 측 관세를 내리는 것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일본 측 얘기다. 일본은 연간 77만t의 쌀을 관세 없이 의무적으로 수입(미니멈 액세스·MA)하고 있는데 이 테두리 안에서 미국산 쌀 수입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이번 합의에 농업을 희생한다는 것은 일절 포함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미·일 관세 합의 소식에 일본 증시는 전일 대비 3.5%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거센 퇴진론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로선 지난 20일 참의원(상원)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미·일 관세 협상을 내세워 ‘총리직 연임’ 의지를 밝힌 터였다. 그런데 협상 타결로 되레 자민당에 불고 있는 사퇴론에 맞설 명분이 사라졌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대표는 “목표하던 것과 다르지 않은가. 일본 경제에 마이너스인 것은 틀림없다”고 비판했다. 당초 이시바 총리가 약속한 “자동차 관세 철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는 “국익에 맞는 교섭이었는지 어땠는지 검증하고 싶다”며 국회에서 교섭 경위를 추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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