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쌀+α 주고 10%P 깎은 일본, 한국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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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의 무역협상이 타결된 23일 일본 도쿄에서 요미우리신문사의 한 직원이 ‘미국, 일본에 15% 관세’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신문 호외판을 배포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일본은 5500억 달러(약 760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AP=연합뉴스]

일본이 23일 미국이 부과한 25% 상호관세를 15%로 내리는 무역 합의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부담이 더 커졌다. 한·일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경쟁국인 데다, 대미 수출 품목과 규모가 비슷해 관세율 차이에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일본은 ▶5500억 달러(약 760조원) 투자 ▶쌀 등 일부 농산물과 자동차·트럭 시장 개방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투자 참여 등을 제안해 상호관세 인하에 성공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본이 협상을 통해 미국의 무역 적자국 중 가장 낮은 상호관세율(15%)을 끌어냈고, 협상국 중 최초로 자동차 품목관세 인하(12.5%)도 관철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통상전문가는 “협상 기간이 짧았던 한국 정부는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상호관세 부과의 연장을 바랐는데, 일본이 먼저 합의에 성공하면서 이를 요구할 명분이 사라졌다”며 “일본이 제시한 수준 이상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감까지 안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미·일 무역 협정의 핵심은 일본이 약정한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다. 반도체·의약품·조선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일본 기업의 대미 투자를 촉진하는 것으로, 투자 계획의 명칭은 ‘재팬 인베스트먼트 이니셔티브’다.

미국, 한국에 550조원 투자펀드 요구…국가예산의 83% 달해

지난 5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에게 ‘소버린 펀드(국부펀드)’ 구상을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정부계 금융기관이 출자·융자·융자보증을 제공하는 것에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아베 총리 시절(2013~2020년) 일본이 미국에 인프라·에너지 투자를 진행한 사례를 보면 JBIC(일본국제협력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공적자금을 출연하고, 여기에 시중은행과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달 초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4000억 달러(약 550조원) 수준의 투자 펀드 조성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지난해 예산(약 656조원)의 83% 수준이다. 손정의 회장처럼 대규모 실탄을 투자할 거물급 투자자가 없는 데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감당하기 벅찬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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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구광모 LG그룹·정의선 현대차그룹 총수와의 회동에서 미국이 요청한 투자에 관해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 정부 주도의 해외 투자가 진행될 경우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기관이 핵심 투자자 역할을 하는데, 대기업·금융기관·연기금 등이 출자하는 펀드로 추가 자금을 조성하기도 한다. 300조원(지난해 말 기준) 규모의 대한투자공사(KIC)의 국부펀드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직접 재원을 마련해 투자하는 방식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투자를 유인하면서 기업들이 나서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학교수는 “민간기업에서만 1000억 달러 이상을 조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쌀 시장 문도 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민감도를 고려해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일본을 비롯한 협상 타결국 모두 농산물 시장을 열었던 것에 비춰볼 때 일부 수용은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정부는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등 연료용 농산물 수입 확대를 우회 카드로 고려하고 있다.

일본이 알래스카 LNG와 관련해 미국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것도 한국 정부로선 부담이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일본과 협력 내지는 한·미·일 공동 투자 형식으로 참여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의 조선·반도체·원전 등 첨단산업 협력과 국방비 증액 등 안보협력 카드가 중요해졌다.

한국 정부는 25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 본부장이 참석하는 ‘2+2 협의’와 통상·경제·안보를 아우르는 막판 협상에서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정부는 협상을 통해 관세를 10%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도, 미국의 최우방으로 꼽히는 일본에도 절대 낮지 않은 15%의 관세가 여전히 부과되고 있다는 평가를 함께 내놓고 있다. 이날 미국에 도착한 여 본부장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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