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빚도 늙어간다"…60대 이상 주담대 27%나 급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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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무주택자 A(66)씨는 올해 초 서울의 13억원 아파트를 사면서 집값의 절반 이상(7억원)을 주택담보대출로 충당했다.30년 기간, 원리금 분할 상환 방식이다. 올해는 거치기간이라 이자만 내고 있지만 살림이 빠듯하다. A씨는 간간이 돈벌이에 나서고, 부인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다. 채무 부담이 커지면 보유하고 있는 나대지를 처분해 일부 부채를 상환할 계획이다. A씨는 “무주택자로 10년을 살았는데 노후에 내 집 한 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며 “요즘 부동산이 빠지면 자산 포트폴리오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은퇴세대인 60대 이상의 가계대출이 늘고 있다.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가계대출 DB를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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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60대 이상의 가계대출은 2020년 1분기 311조7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375조3000억원으로, 5년 새 20.4% 증가했다. 주담대는 1분기 177조4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27.4% 늘었다. 이러한 주담대 증가율은 30대 이하(33.6%)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60대 이상의 전체 가계대출 대비 주담대 비중도 최근 5년 사이 44%에서 47%로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실제 올 1~5월 서울에서 주택을 계약한 60대 이상은 4494명으로 전체 계약자 중 약 14%에 달했다. 박성훈 의원은 "고정 수입이 줄어드는 노년층이 주담대를 늘리는 건 이례적"이라며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기에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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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고령층의 주택 빚이 늘어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은퇴 이후 벌이가 줄다 보니 빚을 내 주거비·식비·교통비 등 생활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사회진출이 늦어지면서 자식을 뒷바라지 하는 기간도 길어졌다. 최근에는 부동산의 자산 가치가 치솟는 영향이 크다. 차후 주택연금으로 전환하거나, 후에 매도해 자산을 불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대 수명이 늘면서 주거 안정에 대한 요구가 커진 측면도 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청년층의 주담대를 조이면서 부모에게로 풍선 효과가 생기는 측면이 있다”며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세 부담을 낮춰준 데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다 보니, 부모가 자식에게 유산으로 줄 것까지 고려해 집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병원비나 자녀 결혼비 등 목돈이 들어가는 일 때문에 주담대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여기에 과거와 달리 건강해지면서 일을 놓지 않는 60대도 늘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나이가 많다고 대출 기간에 차별을 두진 않는다"며 "연금액이나 건보료, 신용카드 사용액 등으로 소득을 환산해 인정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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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문제는 고정소득이 적은 노년층의 빚 증가가 가계부채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60대 이상의 연체율(30일 이상 연체)은 1.3%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60대 이상 연체율은 2020년 1분기 0.8%에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예 경제적 파탄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은 60대가 31%로 가장 많았고, 70대 이상도 11.5%에 달했다. 60대 이상은 2년 연속, 70대 이상은 4년 연속 파산 신청이 늘었다.

김수현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층처럼 상환능력이 약한 계층의 부채가 빠르게 늘면 외부충격에 의해 주택가격이 30% 정도만 조정을 받아도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만일 집단부실이 발생할 경우 전체 가계 빚의 질을 악화시키면서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인구구조를 고려하면 60대 이상의 빚은 더 불어날 전망이다. 박성훈 의원은 “대한민국의 고령화가 ‘부채 고령화’로 이어지는 양상”이라며, “생애 주기와 상환 능력을 고려한 부채 관리와 노후 주거ㆍ의료ㆍ일자리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위원은 "빚을 갚지 못해도 주택 소유권은 유지할 수 있는 ‘담보권신탁’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고령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하면서 금융시장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영끌’에 발목잡힌 2030 

2030세대의 가계대출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30대 이하의 총 가계대출은 올해 1분기 496조4000억원으로 5년 새 71조6000억원이 늘었다. 전 연령대 중 가계대출 증가액이 가장 많다. 주담대도 5년 새 58조3000억원이 늘어난 231조6000억원이었다.

2030세대는 결혼과 내 집 마련 등 목돈이 들 때를 대비해 자산 설계를 시작하고, 적극적인 투자로 종잣돈을 만드는 시기다. 그런데 이미 사회생활 시작부터 주택 빚에 눌려 있으면 자산 형성이 왜곡된다. 사회생활이 활발한 젊은 층이 빚의 무게로 인해 소비가 줄면 경제도 활력이 떨어진다.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 푸어'가 늘어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이 아니고서는 자산 형성이 어려운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실수요자에겐 안정적인 주거 여건을 마련해주고, 부동산에 대한 시장의 심리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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