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태국·캄보디아 교전, 그뒤엔 의형제 탁신·훈센 30년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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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태국군과 캄보디아군이 교전을 벌여 태국 민간인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했다. 인접국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보이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두 나라를 대표하는 탁신 친나왓 가문과 훈센 가문의 30여 년에 걸친 얽히고설킨 애증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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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태국군은 이날 오전 8시20분쯤 태국 동부 수린주(州)의 따 모안 톰 사원 인근에서 캄보디아군이 아군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캄보디아군이 다연장로켓포 등을 동원해 민가를 포격하며 인명 피해가 커졌다. 태국군은 첫 피격을 당한 직후 F-16 6대로 공습하며 반격했다. 반면에 캄보디아 측은 “태국군이 먼저 캄보디아군 진지를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11세기에 크메르 왕국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따 모안 톰 사원에선 지난 2월에도 두 나라 군대의 충돌이 있었다. 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는 자신들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는 사원이다. 국경 긴장이 고조되자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지난 6월 직접 수습에 나섰다.

패통탄은 캄보디아의 실질적 지배자인 훈센 상원의장(전 총리)을 “삼촌”이라고 부르며 달랬다. 패통탄이 “우리는 국경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며 캄보디아 접경지를 담당하는 태국군 사령관을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삼촌’ 훈센은 17분간 이어진 ‘조카’와의 통화를 고스란히 녹음해서는 지인 80여 명에게 돌려버렸다. 졸지에 자국군을 모욕한 꼴이 된 패통탄은 정치적 위기에 몰려 헌법재판소로부터 직무정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패통탄이 훈센을 ‘삼촌’이라고 부른 건 이유가 있다. 패통탄의 아버지 탁신 전 총리는 1992년 통신 및 텔레비전 사업을 위해 캄보디아에 진출하며 훈센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둘은 곧 의형제를 맺고, 훈센이 탁신을 형님으로 모셨다. 정계에 진출한 탁신이 태국 총리에 오르며 둘은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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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2011년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 2024년 탁신의 딸 패통탄이 태국 총리에 오르고 훈센 역시 2023년 아들 훈마넷에게 총리직을 물려주며 우애는 가문 간 연대로 발전했다. 아플 땐 병문안을 가고, 서로 생일잔치를 챙겼다. 훈센의 자택엔 탁신 일가를 위한 방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2006년 군부 쿠데타로 탁신이 실각했을 때도 훈센은 그를 캄보디아 경제고문에 임명하며 우대했다.

하지만 훈센은 자국 카지노 사업이 위협을 받자 태도를 바꾼다. 올해 초 영토 갈등이 빚어지자 태국이 캄보디아로 가는 국경을 폐쇄했는데, 이 때문에 태국인 고객을 받을 수 없게 된 캄보디아 카지노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카지노는 훈센의 재정 기반 중 하나다. 여기에 태국 경찰이 훈센의 조카가 연루된 캄보디아 보이스 피싱 사기단을 수사하자 훈센이 격노했다고 태국 언론은 전했다.

탁신은 “정말 가까웠는데 (훈센이) 내 딸에게 큰 상처를 줄 거라 상상을 하지 못했다”고 언론에 토로했다. 그러자 훈센은 “탁신이 나를 먼저 배신했다”며 “더 큰 폭로를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90년대 초 자신을 겨냥한 쿠데타에 탁신이 물밑 지원을 했음을 시사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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