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네로 황제 능가한 부자도 있었다...부자의 탄생과 위기, 사회적 책임[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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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
귀도 알파니 지음
최정숙 옮김
미래의창

 제목에 속지 말아야 하는 책이다. 최고의 부를 부르는, 부자가 되는 방법론을 기대하고 책장을 폈다간 바로 나가떨어질 수 있다. 부자에 대한 탐구서는 맞지만, 부자론이나 부자 이야기는 아니다.

 경제사학자인 저자는 고대 로마부터 오늘까지의 역사를 훑으며 부자의 탄생과 쇠락, 그들이 직면했던 절체절명의 위기, 그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부를 대물림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부자가 아닌, 부자를 만든 역사와 사회 구조에 대한 분석이자 역사적 사례를 바탕으로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교훈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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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 포인트 조폐국 시설에서 2013년 촬영된 24캐럿 금괴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저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얼마나 있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생산 수단과 산업 구조가 다른 시대의 부자를 비교하기는 쉽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기준은 있어야 하는 만큼 저자는 상위 1%와 5%가 소유한 부의 점유율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부의 집중과 부자의 규모를 개략적으로 그린다.

 저자가 다루는 다음 단계는 부자의 탄생이다. 돈방석 위에 올라앉은 이들이 세상의 부를 쓸어 담게 된 사연을 살핀다. 우선 귀족. 돈 많은 귀족으로 태어나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중세 봉건 시대 전쟁 등을 통해 영토를 확보하며 귀족이 된 자수성가형도 있고 돈 많은 평민층과의 결혼 등을 통해 부자가 된 귀족도 있다.

 또 다른 유형은 혁신과 기술을 발판 삼아 부자가 된 이들이다. 대서양 무역로와 식민지 개척, 산업혁명 등은 부자가 태어날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었다. 상인과 기업가가 부자의 공고한 트랙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 부의 고속도로를 탄 이들은 은행가와 금융업자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문제적 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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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7일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의 야간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사실 부자의 탄생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익숙한 스토리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은 건 화려한 등장인물 덕이다. 로마 시대 네로 황제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졌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와 자신의 토지에서 나온 수입이 영국 국민 총 순소득의 7.3%를 차지했던 영국 귀족 앨런 더 레드의 이야기에는 입이 떡 벌어진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유럽 국제 금융을 주물렀던 로스차일드 가문, 미국의 앤드류 카네기와 존 피어폰트 모건 등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책장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단순히 돈을 축적한 이들로만 부자를 바라본다면 저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본론은 이제부터다. 부자들은 국가보다 더 많은 자산과 자원을 손에 쥐고 제도를 만들며 세상을 바꾸며 권력을 움직였다. 그 결과 전염병(흑사병)과 전쟁(세계대전), 인플레이션, 금융위기 등의 위협에도 부자는 더 강한 회복력을 보이며 심화하는 불평등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런 부자들이 정치권력에 접근하고 행사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저자는 중세 평론가들의 입을 빌려 부자들이 책의 원제인 ‘인간들 사이에서 신처럼(As Gods among men)’ 행동했을 것이란 우려를 드러낸다. 저자가 부자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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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0일, 브라질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초부유층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주 6일 근무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 모습. [AFP=연합뉴스]

 이를 위해 저자는 과거와 오늘의 차이를 파고든다. 과거 서구 사회에서 부자를 죄인으로 보고, 탐욕을 죄악시하다 보니 이들은 각종 구휼 활동과 기반시설 건설 등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종교가 신에 도전하는 부자의 폭주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면서 사회를 불안으로 몰고 가는 불평등의 압력을 낮췄던 셈이다.

 하지만 종교개혁을 거치고 자본주의 정신이 인정받으며 부자들의 부채 의식은 옅어지고 사회적 책임은 퇴색하고 있다. 부자의 기부에 대한 저자의 시선도 곱지 않다. 선의의 포장지를 벗겨내면 기부하는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한편 세금 회피 등의 목적이 깔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부자는 선망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이다. 태생적으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의 그 어떤 시기보다 부의 집중이 심화한 지금은 더 그렇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부자들이 사회에 기여하지 않을 때, 대중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고통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거나 그런 의심을 받을 때 사회는 불안정해지며 폭동과 봉기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경고가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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