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입어보고 사고 싶다"…1조 패션 공룡된 무신사 성공비결 [비크닉]
-
4회 연결
본문
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나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지난 6월 성수동에 문을 연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이구홈 성수'에 사람들이 대기 중인 모습. 29CM
“예쁜 건 다 모여있는 성수동 보물창고” “요즘 잘나간다는 아이템이 다 모인 공간”
오픈 열흘 만에 3만 명이 방문한 곳. 소셜미디어(SNS)에는 한 달 만에 5000여건 이상의 후기 포스팅도 쏟아졌습니다(빅데이터 플랫폼 썸트렌드).그 관심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 6월, 서울 성수동에 문 연 29CM의 첫 오프라인 편집숍 ‘이구홈 성수’입니다. 29CM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플랫폼으로, 지난 2021년 무신사가 인수하면서 남성이 위주인 고객층을 여성까지 넓히는 발판이 되어 준 곳이죠.
이번 이구홈 성수의 오픈은 무신사의 고객 확장에 이은 또 다른 한 걸음을 보여줍니다. 패션 브랜드가 내수 침체와 마케팅 피로감 속에서 온라인으로 더 힘을 쏟을 때, 온라인 패션 플랫폼의 대명사인 무신사는 오히려 오프라인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으니까요. 이미 본사와 쇼룸, 팝업 등을 포함해 성수 일대에 10여 개의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 중인데, 여기에 이구홈 성수라는 또 하나의 퍼즐이 더해진 셈이죠. 온라인에 뿌리를 둔 브랜드가 왜 지금 공간에 집중하는지, 비크닉이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신발 덕후’ 커뮤니티서 1조 패션 기업으로

무신사 성수@대림창고 스토어에서 쇼핑 중인 고객들. 무신사
무신사의 시작은 2001년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였습니다. 스니커즈 덕후들이 모여 사진을 공유하던 공간이었다가 쇼핑몰로 진화했습니다.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신사는 ‘남성복 중심 셀렉트숍’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스트리트 패션 팬덤이 주를 이뤘죠. 하지만 29CM 인수를 기점으로 여성복과 액세서리 등 카테고리를 다변화했고, 단순 중개를 넘어 자사 브랜드·기획전과 콘텐트 마케팅으로 수익 구조를 입체화하기 시작합니다. 그 덕에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25.1% 증가한 1조2427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028억원으로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어요.
무신사가 이처럼 ‘플랫폼 수수료’ 의존에서 벗어나 수익 구조 다각화에 성공한 데는 비결이 있습니다. 2021년 ‘무신사스탠다드’ 홍대점을 시작으로 한 오프라인 진출이에요. “입어보고 사고 싶다”는 고객 피드백을 반영해 문 연 매장은 합리적인 가격대와 SPA(제조·유통일괄형) 구조를 앞세워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현재 전국 27개 지점으로 확대됐어요. 그 덕에 무신사스탠다드 매장 누적 방문자 수는 올해 상반기(1월~6월)에만 1000만명을 넘겼습니다.
또 성수 ‘무신사 성수@대림창고’는 5월 한 달 거래액 32억원으로 월간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홍대, 대구 동성로 등 주요 상권 매장들도 높은 실적을 냈고, 문구페어·뷰티 페스타 같은 자체 기획행사 역시 화제성과 매출을 동시에 끌어올렸어요. 이런 기세 덕에 무신사가 운영하는 32개 오프라인 매장의 올 상반기 누적 판매액은 1000억원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답니다.
감도는 공간에서 완성된다

지난 4월 무신사 스토어 성수@대림창고에서 열린 _K리그 x 산리오캐릭터즈 팝업 대기 열기. 무신사
사실 무신사가 오프라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단지 수익 때문만은 아닙니다. 변화한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브랜드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죠. “이제 소비자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브랜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분석이 힘을 실어줍니다. 실제로 이구홈 성수는 문구·홈패브릭·조명 등 체험형 품목을 전면에 배치해 체류 시간을 늘리고, 구매 전환율을 높였죠.

GS25 편의점에 입점한 무신사 스탠다드 PB 상품들. 김세린 기자
오프라인 진격의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온라인 체제가 잘 갖춰진 기업이라면 오프라인은 또 다른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옴니채널(온·오프라인 연결성)’인데요, 무신사는 적립금·리뷰·상품 연동 등 온라인의 편의 요소를 오프라인에 자연스럽게 옮겨 “매장에서 사면 손해”라는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해소한 겁니다.
간접적으로는 최근 패션 유통 구조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어요. 백화점 중심 유통은 점차 플랫폼 기반 편집숍으로 옮겨가고, 브랜드가 직접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흐름이 주류가 되었죠. 무신사는 이 흐름에 발맞춰 신진 브랜드 입점부터 콘텐트 제작, 커뮤니티 기획까지 아우르는 ‘공간 중심 생태계’를 설계하게 됐어요. 최근엔 GS25 편의점에 무신사스탠다드 이너웨어와 양말 등을 입점시켜 저가 채널 접점도 넓히고 있다고 해요.
오프라인 진출 4년 만에 전국 30여 개 매장을 연 성장의 핵심을 두고 브랜드 측은 ‘개별적 감도 유지’와 ‘큐레이션 공간 구성’을 꼽습니다. 무신사스탠다드가 SPA 기반 합리적 가격대의 브랜드를 보여준다면, 무신사스토어는 한정판 및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큐레이션한 편집숍 색깔입니다. 또 무신사엠프티는 실험적인 디자이너의 의류를 선보이는 전시형 공간으로 구분했죠. 입점 위치 또한 전략적입니다. 스탠다드는 백화점·쇼핑몰 등 유동 인구 중심지에, 스토어와 엠프티는 감도 높은 홍대·성수·압구정 등에 배치됐고요. 내달 1일엔 강남에 나이키·아디다스를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입점시킨 1170㎡ 규모의 신규 스토어도 문을 엽니다.

이구홈 성수를 둘러보고 있는 소비자들. 29CM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오프라인 전략에서 매장 수만 늘리는 것도 아니에요. 성수라는 구심점을 만들었어요. 2019년부터 현재까지 성수 일대에 본사, 쇼룸, 팝업스토어, 편집숍 등을 연달아 배치하면서 ‘무신사 유니버스’를 만든 셈이죠. 이에 대해 브랜드 측은 “로컬 브랜드와 트렌디한 매장이 밀집한 성수는 외국인 관광객과 MZ세대가 교차하며, 트렌드 흐름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어요. 이구홈 성수도 그 연장선입니다. 2022년 말부터 1년간 쇼룸 형태로 운영했던 프리미엄 리빙 셀렉트숍 ‘TTRS’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47개 브랜드 6000여 개 제품을 ‘집처럼’ 큐레이션 했죠.
이런 식으로 무신사는 성수에서 성공한 모델을 대구·부산·울산·청주 등으로 확장하며 무신사식 오프라인 모델을 만들었어요. 29CM도 이구홈성수를 시작으로 지역명을 따 전국으로 매장을 늘릴 것을 고려 중이고, 올해안에 성수동에 자체제작(PB) 상품을 전개하는 전용 매장 ‘29어퍼스트로피(29’)’을 추가로 선보인다고 해요. ‘팬덤 기반 온라인 브랜드’를 ‘경험 기반 오프라인 브랜드’로 입체화한 방식이죠.

무신사 스탠다드 커넥트현대 청주점. 무신사
다음 스텝은 글로벌…K패션의 첫 접점이 되다
오프라인 확장에 성공한 무신사의 다음 성장 동력은 무엇일까요. 바로 글로벌 진출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브랜드 감각과 철학을 담은 콘텐트형 공간을 지향합니다.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콘텐트 제작, 커뮤니티 운영까지. 무신사는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브랜드 생태계를 확장 중이죠.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 외국인 고객 특화 서비스 제공, 무신사
핵심은 매장 수가 아닙니다. ‘무신사식 오프라인 경험’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 덕이죠. 특히 온라인 인지도가 낮은 해외 시장일수록, 직접 보고 입어보는 경험은 브랜드 신뢰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무신사 측은 올해 하반기 중국 상하이 매장을 시작으로,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에도 오프라인 점포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답니다.
옴니채널을 향한 무신사의 도전은 무모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미 성공사례가 있으니까요.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던 미국 뷰티 브랜드 글로시어는 SNS 팬덤을 기반으로 인증샷 유도형 매장을 열며 뉴욕·LA·런던 등으로 확장했고, 미국 안경 브랜드 워비파커는 원하는 안경을 선택해 써볼 수 있는 체험인 ‘홈트라이온’ 서비스를 통해 팬층을 확보한 뒤 미국 전역 200여개 매장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통’이 아니라 ‘경험’을 중심에 둔 전략이었죠. 오프라인에서 완성되는 브랜드 경험이 또 한번 성공할 수 있을까요. 무신사의 다음 스텝이 관심 가는 이유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