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65개 자루에 토막 난 고래…불법포획 부추긴 이 현행법,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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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경북 포항시 한 포구에서 적발된 불법 고래 유통 조직이 어선 내 어창에 밍크고래 2마리를 토막내 자루에 담아 보관하고 있는 모습. 사진 포항해양경찰서

지난 5월 7일 오후 8시쯤 경북 포항시 한 포구. 포항해양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어둠 속에 잠복해 있었다. 잠복에 돌입한 지 2시간여 만에 멀리 바다에서 어선 한 척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50대 선장 A씨 등 2명이 동해안 해상에서 불법 포획한 밍크고래를 배에 싣고 입항하는 중이었다.

배가 포구에 다다르자 형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선장과 선원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어선의 어창 문을 열어 보니 밍크고래 2마리가 토막이 난 채로 자루에 담겨 있었다. 해경이 발견한 자루만 165개. 무게로 따지면 1.8t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포항서 밍크고래 불법 유통 일당 적발 

이후 해경은 어선에서 고래고기와 선장 휴대전화, 장부 등 증거물을 압수한 뒤 분석해 고래고기를 자루에 담아 옮긴 해상 위치를 특정하고 그 일대 운항했던 모든 선박들의 항적을 대조 분석해 또 다른 운반석 1척과 포획선 1척을 찾아냈다. 이들이 과거 밍크고래 2마리를 추가로 포획하고 유통한 사실도 밝혀냈다. 이렇게 밍크고래를 불법 유통한 일당 8명을 검거해 이 중 4명을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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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경북 포항시 한 포구에서 적발된 불법 고래 유통 조직의 범행 개요도. 사진 포항해양경찰서

해양포유동물인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할 경우에는 수산업법과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불법 포획한 고래를 소지·보관·유통·판매한 경우에도 수산자원관리법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무거운 처벌과 수사기관의 단속에도 고래 불법 포획과 유통·판매 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고래 한 마리가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고래는 종류, 크기, 상태에 따라 한 마리당 3000만원에서 6000만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2016년 포항 구룡포에서 잡힌 참고래는 3억1265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고래가 고가의 가격으로 거래되다 보니 불법 포획 범죄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해경이 발간한 ‘2023 해양경찰백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고래 불법포획은 총 49건이 발생했다. 포획된 고래는 71마리였다. 불법포획 관련 피의자는 총 215명으로 이 중 57명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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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4일 오후 경북 포항해양경찰서에서 열린 불법고래포획 및 유통,운반,판매사범 중간수사 발표에서 해경 관계자가 포획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뉴스1

고래가 혼획됐을 때 유통을 허용하는 현행법이 고래의 불법 포획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고래 포획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비보호 종 고래가 혼획됐을 때 유통을 허용하고 있다. ‘혼획’이란 잡으려는 어종에 섞여서 다른 어종이 함께 잡히는 것을 말한다.

“혼획시 유통 가능, 불법 포획 부추겨”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전국 120개의 고래식당에서 연간 240여 마리의 밍크고래를 소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서 밍크고래가 연평균 60마리 정도 혼획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70% 이상이 불법으로 포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단체는 매년 고래 불법 포획 사건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혼획된 고래를 유통할 수 있도록 허용한 현행법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불법 포획 단속을 피하기 위해 혼획을 유도하는 조업 활동을 의도적으로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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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4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 북동방 해상에서 밍크고래 혼획 신고를 접수한 해양경찰서 관계자가 고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포항해양경찰서

실제 의도적 혼획이 의심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윤준병 의원이 지난해 해경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혼획된 고래는 총 4084마리에 달한다. 이 중 수협 등을 통한 위탁판매가 가능한 밍크고래와 까치돌고래, 쇠돌고래, 큰머리돌고래, 긴부리돌고래 등 5종은 372마리가 혼획됐다. 이 중 밍크고래가 86.8%에 달한다.

이어 최근 5년간 밍크고래가 수협에 위판된 건수는 총 328건으로 거래금액은 총 153억2400만원으로 집계됐는데, 한 어민이 밍크고래를 8번이나 혼획한 사례도 확인됐다. 5번 이상 혼획한 어민은 3명이 더 있었다. 고래가 지나가는 경로에 그물을 설치해 고의로 혼획하는 행위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윤 의원은 “고래를 의도적으로 포획했거나 혹은 우연히 그물에 걸린 고래를 인지하고도 구조하지 않고 혼획으로 빙자해 경제적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현행 고래 위판제도에 문제가 없는지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고래의 불법포획을 보다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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