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세 15%가 마지노선…EU마저 관세 낮추면 韓 더 큰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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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관세 협상이 촉박한 시간과 ‘15%’라는 숫자의 덫에 걸렸다. 상호 관세가 부과되는 8월 1일까지 불과 5일 밖에 남지 않은데다, 미리 15%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일본과 비슷한 성적표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만약 관세 협상에 실패하거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 경우 국내 경제에 전방위적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일인 8월 1일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24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2025.7.24/뉴스1
2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1일(현지시간)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만나 통상 현안을 협의한다. 상호 관세 발효일 하루 전의 막판 교섭이다. 정부는 막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4~25일 이틀에 걸쳐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만나 협상을 진행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27일 참모들로부터 협상 상황을 보고 받고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등 대통령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정부는 농산물 등을 협상 품목에 올리고 조선업 협력 등을 협상 타결 촉매제로 활용할 전망이다. 특히 조선업은 단순 투자가 아니나 현지 건조, 기술 이전 등 미국의 조선업 부흥을 위한 구체적 지원을 포함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부담은 상당하다. 촉박한 시간도 있지만 ‘15%’라는 벽과도 싸워야 한다. 일본이 지난 23일 5500억 달러(약 760조원) 투자와 쌀 등 농산물 시장을 내주고 합의한 숫자다. 자동차에 부과되던 품목 관세는 25%에서 15%(기존 관세 2.5% 포함)로 조정됐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유럽연합(EU)도 자동차 수출관세를 15%로 낮추는 쪽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주원 기자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15%의 관세를 지켜야 되는 압박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동차 외에도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 상당수가 품목별 관세에 묶여 있어 관세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한국 경제와 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일본, 독일 등으로부터 수입되는 제품 뿐 아니라 미국 내 생산 물량까지 경쟁해야 하는 자동차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독일은 미국 수입시장에서 한국의 가장 큰 경쟁국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미국 수입 상위 9개국을 대상으로 수출경합도(ESI)를 분석해보니 일본 0.52, 독일 0.41 등의 순이었다. 수출경합도가 1에 가까울수록 같은 품목을 미국에 주로 수출해 경쟁도가 치열한 국가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일본과 동일한 수준의 관세가 부여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 5월 전망한 수준이 될 것 ”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관세가 15% 이상 부여될 경우 기존 경제성장 전망치(0.8%)보다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 교수는 "관세로 인해 대미 수출이 감소하게 되면 내수 회복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증가 효과를 모두 상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의 일본과 경쟁이 치열하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의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은 일본 13%와 한국 11.5% 등으로 격차는 1.5%포인트에 불과하다. 한국은 그동안 일본 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 등을 경쟁력으로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을 늘려왔다. 미국에서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판매 가격은 2만6900달러(기본 트림 기준)로 도요타 캠리(2만8400달러)보다 5% 이상 저렴하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점유율은 2019년 7.8%에서 올해 상반기 10.9%까지 늘었다. 김성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주요 경쟁사인 일본업체 대해 가격 경쟁력 확보 상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하이브리드(HEV) 차량을 국내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에게 매우 도전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상호관세율과 자동차ㆍ철강 등 품목별 관세의 최대한 완화를 요구하면서 일단 일본과 같은 상호관세율 15%를 1차 기준선으로 설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한 통상 분야 전문가는 “상호관세 15%는 미국의 관심이 큰 한국의 조선 분야 협력, 국방비 인상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불가능한 목표는 아닌 듯하다”며 “다만 현행 25%인 자동차 관세를 일본과 같은 15%로 낮추려면 한국이 상당한 양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협상이 실패할 경우 한국 경제 충격파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국내 총생산 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5.8%)의 2배 수준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도 44.4%(2024년 기준)로 OECD 평균(30%)보다 높다. 게다가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18.8%으로 높다.

김주원 기자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지난 2월 대미 관세율이 1%포인트 인상될 경우 대미수출은 0.45% 감소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상호관세(25%)가 그대로 부과될 경우 산술적으로 대미 수출이 11% 이상 줄게 된다. 이미 품목별 관세 25%를 적용받는 자동차는 지난 6월 대미 수출액이 전년 대비 16%가 줄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미국의 관세정책이 그대로 강행되면 한국 경제가 안정을 회복한다고 해도 실질 GDP가 0.3∼0.4%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국 경제가 미국의 관세 충격에 적응해도 회복 불가능한 구조적인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국 의사결정권자들의 관심은 유럽연합(EU)과 중국과의 통상 협상에 쏠려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트닉 상무장관과 그리어 USTR 대표 등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로 출국했다.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28~29일 중국과의 고위급 무역회담이 예정돼 있다. 한국에는 30~31일 외에 남은 대면 협상 시간이 없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정부 입장에서는 15% 이상의 성적표를 받아들인다면 일본보다 못한 협상을 했다는 것에 국내 여론에 대한 부담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주말 등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관세 협상의 마지노선은 3일인 만큼 막판까지 협상을 타결하려고 노력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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