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칩 보조금' 지고 '전력, 데이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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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産) 칩’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전력망’으로.

미국 첨단 반도체 정책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칩 제조’보다 ‘인프라 확보’에 방점을 찍은 AI 정책을 발표했고, 미국 기업 인텔은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경쟁을 사실상 포기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물론 에너지·데이터센터·전력망 등의 기업에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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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AI 서밋에서 연설한 뒤 서명한 행정명령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데이터센터∙전력망·핵발전 ‘규제 확 푼다’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확립하겠다’며 서명한 ‘AI 행동 계획’은 ▶혁신(규제 완화) ▶AI 인프라 ▶AI 외교·안보 등 3개 축으로 짜여졌다. ‘혁신’ 부분은 주로 AI 소프트웨어에, ‘인프라’는 하드웨어에, ‘외교·안보’는 국제 리더십에 초점을 뒀다.

이중 ‘인프라’ 장에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전력 발전소 등 AI 인프라를 빠르게 건설할 수 있도록 환경 허가와 규제를 확실하게 풀겠다는 선언이 담겼다.

특히 ‘AI 혁신에 부합하는 전력망 구축’을 별도로 언급했다. 이를 위한 정책으로는 ▶전력망 최적화·효율화 기술을 개발하고, ▶지열·핵분열·핵융합 등 새로운 에너지 발전 기술을 적극 도입하겠다고 했다.

보조금, ‘납세자 수익’ 우선

반면, 반도체 제조에 대해서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납세자에게 불리한 거래를 맺거나 기업에 광범위한 이데올로기적 의제를 강요하지 않고 이 재건을 주도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미국에 짓는 반도체 생산 시설에 보조금을 약속했던 전임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보조금보다 규제 완화로 AI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구글·메타 같은 미국 빅테크가 바라던 바다. 이날 블룸버그는 “지난 3월 오픈AI, 구글, 메타 등이 정부에 AI 정책을 건의했는데, 이번 발표는 이들의 요구를 거의 모두 수용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빅테크는 ‘미국 기업 인텔이 미국에서 만든 칩’을 사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다만 AI 클라우드·서비스를 빠르고 저렴하게 구동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전력 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

바이든 '인텔, 트럼프 '엔비디아'?

전임 바이든 정부 반도체 정책의 총아는 누가 뭐래도 인텔이었다. ‘미국 땅에서 첨단 칩 만들겠다는 미국 기업’ 인텔에게 바이든 정부는 총 200억 달러(약 27조원)에 달하는 반도체과학법(CHIPS) 보조금(대출 포함)을 몰아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 24일 인텔은 “더는 수요 없는 과잉 투자를 하지 않겠다”며 TSMC·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첨단 파운드리 경쟁에서 사실상 기권 선언을 했다. 이날 회사는 2분기에 파운드리 부문에서만 4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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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AI 경쟁 승리' 써밋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중 지목당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의 마음은 엔비디아로 향하는 모양새다. 23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AI 경쟁 써밋’에서 연설하던 중 객석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를 일으켜 세웠다. “엔비디아가 대체 뭔지 몰랐고, (독점기업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제 젠슨 황을 알고, (왜 쪼개면 안 되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라고 말하면서다. 트럼프 정부가 금지했던 엔비디아 AI 가속기 ‘H20’의 중국 수출도 지난주 허가받아 3개월 만에 재개됐다.

지난 4월 엔비디아는 “4년 내 5000억 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AI 인프라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애리조나에서 AI 반도체를 만들어(TSMC) 패키징(앰코·SPIL)까지 하고, 텍사스에서 서버 조립(폭스콘·위스트론)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 참여한 회사들은 앰코 외에 모두 대만 회사지만, ‘미국 땅에서 AI 수퍼컴퓨터를 완성하겠다’는 엔비디아 논리에 트럼프 정부가 고개를 끄덕인 모양새다.

한국 영향은

AI 행동 계획은 AI 인프라에 ‘적대국의(adversarial) 기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3차례 강조했다. 적대국을 콕 집어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발전소·전력망·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구축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미국의 동맹’에 일감을 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전선·원전·에너지·냉난방 공조(HVAC)·스토리지 등 AI 후방산업 분야의 한국 기업이 기회를 노려볼 대목이다.

다만, 트럼프 정부가 “칩스법 자금 지원의 모든 불필요한 요건을 제거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만큼, 삼성전자 테일러 반도체 공장도 보조금 등 직접 지원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 파운드리의 몰락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첨단 공정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삼성 파운드리도 기로에 설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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