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국은 거울이자 창”…비판적 중국학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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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이희옥교수 정년퇴임 및 『중국사회과학논총』특집호 발간기념 심포지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미·중 전략 경쟁, 신냉전, 국제정치 담론의 재편 등 복합적 정세의 긴장 속에서 중국학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25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이희옥 교수 정년퇴임 및 『중국사회과학논총』특집호 발간기념 심포지엄에는 위와 같은 질문을 안고 국내의 중국학 학자들이 모였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학자들은 “국내외 비판적 중국연구의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중국·대만·미국·한국 등 다양한 시각에서 중국학 연구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날 정년퇴임을 앞둔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 이희옥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여정과 중국 연구의 방향성을 회고하며 “중국을 이해하려면 사회주의라는 체제적 기반을 전제로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의 충격 속에서 문학과 철학을 통해 사유를 확장했고 헝가리의 철학자 루카치의 ‘총체성’ 개념에서 출발한 학문적 문제의식이 결국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각으로 연결됐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당시 냉전적 분위기 속에서 현대 중국 문학과 정치에 접근하는 것은 하나의 지적 저항이었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됐던 영역을 탐색했던 당시 경험이 오늘날 한국 내 중국 이해에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성균중국연구소 설립 배경과 과정, 학제 간 협동 연구의 중요성, 정책연구와 학문연구의 균형을 설명하며 “중국 연구는 단지 한중 관계나 북한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사유의 뿌리와 지적 기반 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거울이며 우리의 문제를 되 비춰보는 창이기도 하다”며 “지적 허영심과 관용의 정신을 잃지 않고 학문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비교 정치의 본령”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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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중국사회과학논총』특집호 발간기념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 중인 이희옥 교수. 중국연구소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중국 연구는 단지 중국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지를 되짚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희옥 교수의 연구 여정을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하며 '내재적 접근'이라는 관점이 한국의 중국학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백 교수는 내재적 접근의 핵심을“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변형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개념이 단순한 중국 중심적 해석이나 이념 수용이 아닌 당대 중국의 현실과 모순을 분석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1990년대 초 사회운동과 현실 사회주의 연구가 맞물려 한국 중국학이 형성됐으며 이후 제도화된 학회와 대학 제도 속에서 연구가 확장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1세대 내재적 접근이 중국 내부의 체제 전환과 노동·농촌 문제, 지식인 담론 등을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2세대는 공동 연구와 정책 분석으로 확장되며 복잡성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 이후에는 이데올로기적 분석이 현실 정책에 뒤처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현재 중국 연구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홍규 동서대 교수는 “비판적 중국학은 수도권 중심의 담론 구조를 넘어서 지역의 시각에서 재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의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의 중국 연구 현황과 한계를 진단하면서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대부분 서울권에서 배출되고 중앙 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연구대상인 중국에 대해서도 지역성의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판적 중국학은 단지 중국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이미 글로벌 자본주의의 핵심이 된 현실에서 지역의 권력 불균형, 하층 주체의 목소리, 사회적 불평등을 조망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은 단순한 변방이 아니라 중국 연구의 ‘핵심 현장’으로 봐야 하며 이를 위해 지역 연구자들의 주체화와 담론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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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이희옥교수 정년퇴임 및 『중국사회과학논총』특집호 발간기념 심포지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이종혁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 내 중국학은 학계와 정책 분야가 구조적으로 분화되며 상호 단절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 둘을 잇는 중간 지대의 제도화가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비판적 중국학 전통이 미국의 이분화 된 학문 지형을 해소할 중요한 기여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냉전기 미국 내 중국학이 전략적 지역학으로 출발해 학계와 정책 분야가 공진화 관계를 형성했으나 2000년대 이후 학계는 점차 추상적 이론 중심으로, 정치계는 안보·경제 중심의 단기 분석으로 양분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기 분화가 급속히 심화되면서 학계는 ‘친중’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더욱 신중해졌고 반대로 정책 분야는 전략적 대중 압박을 강화하며 학문적 의견을 배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계와 정책계를 억지로 통합하는 대신 그사이에 학문적 깊이와 전략적 실용성을 조율할 수 있는 ‘전략적 중국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영남 서울대 교수는 서양학계의 '마오쩌둥 사상 논쟁'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시진핑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마오 사상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면서 “시진핑 사상은 마오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서양학계의 연구 방법론과는 다른 관점, 즉 공식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마오 사상-덩샤오핑 이론-시진핑 사상 관련성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오 사상이 보편적 가치를 갖지 못하고 중국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머문다면 마오 사상 연구도 소수 학자의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면서 중국 학계와 한국을 포함한 세계 학계는 새로운 시각으로 마오 사상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연구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장영희 충남대 교수는 “2016년 대만 정권 교체 이후 중국 연구가 학문적 탐구에서 국가 안보 중심의 영역으로 급속히 재편됐다”며 대만 사례를 통해 ‘안보화’와 ‘지식 정치’의 이중 구조를 분석했다. 민진당 정권과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시진핑의 강경한 양안 정책이 맞물리며 통일전선 전략은 학문적 개념이 아닌 실존적 위협으로 전환됐고 이에 따라 중국 관련 연구는 정치적 생존의 문제로 변했다.

대만 정부는 중국과의 학술 교류를 기술 탈취나 인식 조작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연구 지원은 중국 위협론과 같은 안보 중심 담론에 집중되고 문화·사회 분야는 점차 주변화되고 있다. 이는 학자들이 연구비와 경력 유지를 위해 지배적 담론에 편승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구조로 작동한다. 그는 “한국도 유사한 지정학·정치적 압박에 직면해 있으며 대만의 사례는 우리의 중국 연구 방향에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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