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산악계 큰 별이 졌다…'히말라야 등반 1세대' 허영호 대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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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에베레스트 북면(초마랑마)을 등정한 허영호 대장. 중앙DB
히말라야 등반 1세대이자 땅과 하늘에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허영호 대장이 담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71세.
유족은 지난해 10월 담도암 판정을 받은 후 치료를 이어오고 있었으나, 최근 급격히 건강이 악화했다고 전했다. 산악계는 허 대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허영호 대장은 충북 제천 출신의 등반가이자 탐험가다. 산악계에서도 인정하는 체력으로 1982년 마칼루(8463m)와 이듬해 마나슬루(8163m)을 연달아 등정했으며, 1987년 12월 한국인으로선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8848m)에 올랐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세번째 동계 등정이었다. 당시 산악계는 1977년 고(故) 고상돈(1979년 데날리에서 별세)의 에베레스트 초등 이후 히말라야에서 고전하고 있었지만, 그의 동계 초등으로 탄력을 받아 이듬해 8000m 산을 연달아 올랐다.
그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6번 오른 철인이었다. ‘상업원정대(돈을 받고 산 정상까지 안내하는 원정대)’의 가이드로 산에 오르는 네팔의 셰르파(Sherpa)를 빼고 그처럼 에베레스트 정상을 수차례 밟은 등반가는 많지 않다. 1993년에 한국 최초로 중국쪽(초모랑마) 북동릉을 통해 등정했으며, 2010년엔 아들 허재석(41) 씨와 함께 올라 세계 두 번째로 ‘부자 등정’에 성공했다. 그해는 그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해이기도 하다. 아들 허재석 씨는 지병으로 투병하다 떠나보낸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또 아버지 혼자 산에 보내기 어려워 따라나섰다고 한다. 허 대장은 1990년 처음 히말라야에 가족을 데리고 간 후 종종 아들과 함께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다. 아들은 현재 회사원이다.
허 대장은 야심만만한 탐험가였다. 후배인 엄홍길과 고(故) 박영석(2011년 안나푸르나에서 별세) 대장이 히말라야 8000m 14개 봉우리 완등에 열중하던 시절, 그는 극지와 하늘로 탐험의 세계를 넓혔다. 1994년 남극점에 도달했으며, 이듬해 북극 횡단 원정을 통해 북극점을 밟았다. 당시 에베레스트와 남·북극 도달은 세계 두 번째였다. 이후 그해 말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 메시프(5140m)에 올라 세계 최초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완수했다. 그러면서도 원정 중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았다.
비행기로 지구를 한바퀴 도는 어릴 적 꿈을 위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2011년 초경량 비행기로 국토의 동·남·서쪽 끝인 독도, 마라도, 가거도를 거쳐 다시 충북 제천비행장으로 돌아오는 1800㎞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세계 일주에 나서진 못했다.
산악인 후배 서기석(60) 씨는 “대부분의 산악인이 산 정상에 오르는 데만 집중하지만, 허 대장은 원정대의 처음과 끝을 스스로 완수하는 행정가이기도 했다. 등반은 물론 현지 자료 수집과 현지인과의 유대, 행정 처리 등이 철두철미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성격 탓에 더러 오해를 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한 것도 그런 점이 작용했을 거라는 게 산악계의 시각이다.
정부는 허 대장의 공로를 인정해 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을 수여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 발인은 8월 1일 오전 10시 40분. 장지는 충북 제천 선영이다.
김영주 기자 xxxxxxxxxxx1xxxxxx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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