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식판 뺏기고 목졸린 공무직…신고하니 "직장 괴롭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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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7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의 한 직원이 다른 직원들과 달리 점심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고 폭행당해 신고했지만 유적본부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해당 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따져보기 위해 지난주부터 재조사 중이다.
3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궁능유적본부에서 일하는 공무직 근로자 A씨(59)는 척추 유압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87)를 간병하기 위해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무급휴직을 다녀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궁능유적본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A씨는 복직 첫날(지난해 3월 25일) 오전부터 굴취 공사에 투입됐음에도 점심 식사를 걸러야 했다. 같은 부서 직원들의 취사 업무를 맡았던 B씨가 “식재료가 부족하다. 사람도 없는데 휴가를 다녀온 쓰레기 같은 놈에게 밥을 줄 수 없다”며 식판을 뺏어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궁능유적본부는 “평소 A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B씨가 ‘A에게 밥을 주라고 지시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식사 준비도 하지 않겠다’고 해 내부 회의를 거쳐 도시락을 싸오게 했다”고 밝혔다. 이에 A씨는 다음날부터 보온 도시락 2개에 밥과 국을 직접 담아서 출근했다.

A씨가 직접 준비했던 도시락의 모습. 주변 직원들은 B씨가 준비한 밥을 먹고 있다. 사진 제보자 A씨
B씨의 반말·폭언을 참아내던 A씨는 작업 현장에서 구타도 당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해 7월 19일 작업 현장에서 B씨가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의 멱살을 잡고 목을 졸랐고, 턱 부분도 가격했다”고 말했다. 유적본부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A씨도 B씨의 손가락을 깨물었다”며 “일방폭행이 아닌 쌍방폭행으로 보여진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에도 괴롭힘이 지속되자, A씨는 지난해 10월 국무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조정실에 민원을 넣었다. 두 달 뒤 궁능유적본부는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
A씨는 조사가 종료된 올해 2월 3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이 안 된다”는 결과를 전달받았다. 12월부터 진행됐던 분리 조치도 해제됐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2019년부터 자문계약을 체결했던 한 노무법인에 위탁해 조사했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근로기준법(76조3)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오면 사용자 측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노무법인을 통한 대리인이 조사를 진행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의뢰한 노무법인에서 작성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 보고서의 일부. 제보자 A씨 제공
A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제출받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노무법인은 “관련 행위들이 신고인 A씨에게 발생한 신체적·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이것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로는 볼 수 없어서 ‘직장 내 괴롭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식사 제외와 폭행 등 따돌림은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명시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라며 “본부에서 섭외한 노무법인이 국가유산청에 유리한 측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주장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해자나 회사 측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고 중립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 관련 조사 일정과 명단이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게시판에 공개되어있다. 사진 제보자 A씨
최근 A씨가 다시 문제제기를 해 재조사에 들어갔지만, 궁능유적본부가 조사 일정과 명단을 사내 게시판에 공지하며 2차 가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통화에서 “궁능유적본부가 아닌 국가유산청 감사과의 별도 감사를 통해 모든 과정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며 “직원들의 어려움을 면밀히 파악해보고, 잘못이 있었다면 엄중히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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