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GDP대비 대미투자 한국 20%·일본 13%…같지만 다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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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은 미국이라는 거대 소비시장을 놓칠 수 없는 한국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내줄 수밖에 없는 협상이었다. 협상의 데드라인(8월 1일)이 정해진 와중에, 15%라는 하한선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다. 한국보다 먼저 협상을 마친 일본과 유럽연합(EU)은 각각 5500억 달러와 6000억 달러 등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도 15%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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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통상 전문가들은 이런 협상의 특성을 들어 “상대적으로 선방한 협상”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이 없었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다만 관세를 낮추기 위해 약속한 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 구매 등(1000억 달러)을 빼고 미국 측에 약속한 금액은 3500억 달러.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0.4% 수준이다. 이마저도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액은 빠진 액수다. 에너지 구매를 포함하면 이 비중은 25%까지 오른다.

앞서 지난달 23일 합의한 일본의 대미 투자 규모는 GDP 대비 13.1% 수준이다. EU 역시 투자 규모가 GDP 대비 6.9%다. 한국의 GDP는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대미 투자액을 GDP 대비로 환산하면 한국의 부담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통상전문가는 “농산물의 추가 개방이 없다는 현금을 받기 위해 막대한 대미 투자라는 어음을 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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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다만 정부는 한국에 실익이 큰 조선업 협력 펀드를 제외하고, 꼬리표가 정해지지 않은 남은 대미 펀드 2000억 달러를 기준으로 일본과의 합의를 비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기준 대미 흑자 규모도 한국이 660억 달러로 일본(685억 달러)과 비슷한 만큼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게 정부 측의 주장이다. 게다가 투자금액 대부분은 대출과 보증인 만큼 실제 부담은 낮아질 수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협상을 더 끌어 상호관세가 부과됐다면 더 불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대미 투자 등을 상당액 양보했지만, 선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본과 달리 이번 합의에는 미국이 투자 권한을 직접 ‘소유·통제한다’는 구속력이 강한 문구가 포함돼 향후 투자 이행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한국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며(owned and controlled by the United States), 내가 대통령으로서 선정한 투자(and selected by myself)에 대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22일 일본과의 무역협상에서 일본 투자에 대해 언급한 “일본이 내 지시에 따라 (at my direction) 5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과 차이가 있다.  일본 닛케이는 이에 대해 “일본과의 합의 발표 당시 볼 수 없었던 표현”이라고 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혜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외교부 2차관을 지낸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한국이 한·미 FTA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게 자동차였는데 일본 등과 이제 똑같은 상황이 됐다”며 “한국이 공산품 수출 등에서 이익을 많이 본 한·미 FTA의 미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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