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빨간 간판에 코카콜라…팝업 없이 단숨에 '핫플'된 시장 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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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의 태도와 세계관을 담으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올 상반기에만 1488개, 하루에만 8곳 오픈(스위트스팟 집계). 바야흐로 ‘팝업 홍수’의 시대입니다. 식상하다 하면서도 줄어들지 않는 건 단시간에 브랜드를 압축해 보여주기에 팝업만 한 방법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팝업은 더이상 ‘새로운 경험’이 아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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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와의 프로젝트로 변화한 신흥시장 입구 타이포그래피. 코카콜라

그래서일까요.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습니다. 팝업 대신 ‘머무는 법’을 고민하는 공간 마케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정 매장이 아닌, 골목 전체와 장기적으로 호흡하며 팝업 그 다음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어요. 짧고 강한 노출 대신, 오래 보고 기억되는 ‘관계 맺기’로 방향을 전환하는 셈이죠. 오늘 비크닉은 이 ‘살아 숨 쉬는 마케팅의 현장을 따라가 봅니다.

골목에 스며들다, 팝업이 아닌 ‘머무름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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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와의 프로젝트로 공간 리브랜딩을 한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전경. 코카콜라

골목으로 나온 대표 주자는 코카콜라입니다. 지난 6월 말부터 브랜드는 서울 용산2가동 해방촌 신흥시장의 오래된 골목에 조용한 변화의 색을 입혔어요. 시장 입구 간판부터 시작해 곳곳에 코카콜라의 시그니처 컬러와 로고를 스며들게 해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냈죠. ‘유럽 분위기 나는 서울 골목’ ‘여권 없이 떠나는 해외여행’ 등 제목의 영상으로 SNS 조회 수가 100만이 넘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코카콜라가 골목을 ‘점령’한 건 아니에요. 본래 1953년 문을 연 신흥시장은 서민의 전통시장으로 꼽히다, 몇 년 사이 2030 세대에게 명소가 됐죠. 다이닝 매장과 이국적인 식당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오래된 정취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변모했어요. 코카콜라는 이곳에 들어서며 “누군가가 되살려야 할 공간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빌려 써야 할 곳”이라는 태도를 유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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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음식점 '낀라오'의 기존 결을 살리면서도 코카콜라의 디자인적 요소를 녹인 공간 브랜딩. 코카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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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 한식당의 결에 맞춰 빈티지 포스터가 붙여진 모습. 코카콜라

왜 이곳이었을까 싶었는데 브랜드의 답은 명쾌했어요. “철학과 결이 닿는 ‘문화 공간’으로 바라봤다”고 해요. 글로벌 캠페인 ‘코크앤밀(Coke & Meal)’과 연결점이 있었던 것도 한몫했죠. 이 캠페인은 세계 각국의 식문화 속에서 콜라와 어울리는 미식 경험을 제안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취지에 맞게 총 19개 매장 중 11곳 식당의 국적과 분위기에 따라 디자인을 달리했어요. 미국식 중화요리점엔 중국어 간판을, 터줏대감 한식당엔 세월의 결이 배인 빈티지 포스터를 붙이는 식으로요.

신흥시장 골목이 여기에 딱 어울렸죠. 다양한 미식 문화가 녹아든 거리, 게다가 지역성과 브랜드 정체성의 맥락이 맞아떨어졌으니까요. 코카콜라가 처음 한국에 소개된 경로가 미군을 통해서였고, 해방촌은 외국인과 로컬이 뒤섞인 상권이라는 점에서 두 축은 자연스럽게 연결됐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로컬이 가장 힙하다고 말하는데, 이들 세대가 말하는 ‘힙함’이 연출되려면 브랜드와 골목이 어우러지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줘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이미 자생력이 있는 골목 안에 브랜드가 튀지 않게 들어선 점이 상인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질감을 덜었다”고 덧붙였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 브랜딩은 ‘스며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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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에서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건물 일부를 포토존으로 탈바꿈한 모습. 코카콜라

이 프로젝트의 진짜 핵심은 ‘존중’이라는 태도에 있어요. 코카콜라는 브랜드를 강조한 간판이나 대형 구조물 없이, 테이블 위 오브제, 벽면 디테일, 바닥의 문구처럼 작고 섬세한 장치들로 브랜드를 퍼뜨렸어요. 매장마다 변주된 로고는 상점 고유의 개성을 해치지 않았고, 골목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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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세대에게 맛집으로 알려진 '해방촌닭'에 코카콜라의 브랜딩이 더해진 모습. 코카콜라

이뿐 아니에요. 브랜드는 수십 번씩 시장을 오가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눴고, “기존 골목의 멋을 해치지 않겠다”는 데 중점을 뒀죠. 비스트로조조의 김효정 대표는 “요즘 손님들은 단지 맛만 보는 게 아니라, 공간이 주는 감성과 경험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번 코카콜라와의 공간 디자인은 기존 신흥시장의 멋을 지키며 우리 가게의 매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뤄졌다”고 말했어요. 단지 ‘브랜드가 들어섰다’가 아니라, “골목이 더 예뻐졌다”는 반응이 나온 이유죠.

브랜드의 뿌리가 낙후 골목과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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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랜딩된 교촌통닭 구미 1호점 전경. 교촌치킨

골목에 스며들기보다 아예 새롭게 설계한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6월 교촌치킨이 경북 구미 송정동의 오래된 상권에 조성한 ‘교촌1991문화거리’인데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도시재생이라는 언어로 번역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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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1991로'의 교촌역사문화로드 전경. 교촌치킨

이 골목은 교촌치킨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1991년, 권원강 회장이 이곳에 1호점을 열며 브랜드의 첫 닻을 내렸고, 이후 전국 프랜차이즈로 성장했으니까요. 하지만 인근 상권은 시간이 흐르며 상권은 낙후됐고,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받았어요. 교촌은 그 뿌리로 돌아가 다시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고, 구미시도 승낙한 끝에 총 18억원가량을 투입해 대규모 리브랜딩을 시작했어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한 만큼 교촌치킨은 단순한 플래그십 스토어가 아니라, 브랜드의 서사를 담은 거리 전체를 기획했어요. 창업 스토리를 담은 전시와 조형물, 치킨 체험존, 구미 특산물로 만든 신메뉴까지. 1호점이 있던 500m 구간 전체가 브랜드와 로컬이 만나는 체험형 거리로 재구성한 겁니다. 공간 곳곳에는 ‘에어컨 없이 배달하던 시절’을 구현한 조형물이 설치됐고, 방치됐던 녹지는 ‘치맥공원’으로 바뀌었죠. 지역 식재료로 만든 양파튀김, 멜론 하이볼처럼 브랜드는 지역성과 결합해 다시 태어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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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녹지가 교촌치킨을 만나 '치맥공원'으로 탈바꿈한 모습. 교촌치킨

결국 이 거리에는 ‘교촌1991로’라는 명예 도로명이 부여됐고, 구미시도 이 브랜드의 공간을 도시의 일부로 공식화했어요. 공식 관광 코스로도 등록됐고요. ‘K-치킨의 고향’이라는 정체성이 도시 브랜딩으로 잘 정착한 사례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단순 마케팅이 아닌, 주민과 함께 만드는 공간을 지향했다”는 임영환 교촌에프앤비 본부장의 말처럼 기존 상권과의 공존을 지향한 건데요, 실제로 골목 내 공용 화장실과 계단, 인도 등 생활 인프라를 정비한 면이 주민과 기존 상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요.

골목과 브랜드, 공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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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정육식당 '훈육'에 코카콜라의 감성이 자연스레 묻어난 모습. 코카콜라

코카콜라와 교촌의 방식은 각각 달랐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향합니다. ‘브랜드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라는 것이죠. 이런 변화는 글로벌에서도 감지됩니다. 지난 7월 21일(현지시간) 미국 LA 웨스트 할리우드에 들어선 ‘테슬라 다이너(Tesla Diner)’는 미국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의 브랜드 공간인데요, 전기차 충전소, 브랜드 체험 공간, 복고풍 다이너를 결합한 하이브리드형식으로 기획됐죠. “단순한 쇼룸을 넘어서, 특정 문화와 취향이 응축된 지역에서 테슬라 팬덤을 중심으로 ‘머무는 전략’을 실험한 결과”라는 외신 매체 분석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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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웨스트 할리우드의 감성에 맞게 들어선 '테슬라 다이너'. Tesla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건 테슬라가 택한 웨스트 할리우드라는 지역은 안목 높은 소비자와 창작자들이 모인 트렌디한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공간 구성만 봐도 인근 상권과 골목 특유의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죠. 김영갑 KYG상권분석연구원 교수는 이런 흐름을 “상권 분석에 기반을 둔 브랜드 전략의 진화”라고 진단합니다.

또 김 교수는 “과거에는 개별 점포나 브랜드 중심의 콘텐트로 노출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많았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며 “공간의 특성과 소비자의 감각을 먼저 읽은 뒤 조심스럽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브랜드는 공간을 점유하지 않습니다. 공간을 소비하지도 않죠. 그 대신, 공간과 함께 자랍니다. 숨 쉬는 골목, 살아 있는 동네, 그 안에 자연스럽게 머무는 브랜드만이 진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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