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청래 대놓고 대야 선전포고…비타협∙묻지마 입법독주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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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당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당선 일성은 ‘협치 불가’였고, 핵심 공약은 ‘야당 해산’이었다. 경선 기간 내내 투사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정청래(4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정부의 첫 여당 사령탑에 올랐다. “당심과 민심은 다르지 않다”며 시종일관 강성 지지층 표심 사로잡기에 집중한 결과다. 정 대표는 8·2 전당대회 직후 현장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라 여야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힘의) 사과와 반성 없이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경선 초반부터 “험한, 궂은, 싸우는 일은 앞장서 솔선수범하겠다”며 스스로를 ‘당대포’라 칭해 온 정 대표의 당선은 민주당이 또 한번 ‘당원 중심 정당’임을 입증한 결과다. 정 대표는 의원들의 지지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대의원 투표에서 경쟁자였던 박찬대 의원에 뒤졌지만, 권리당원 득표(66.48%)에서 박 의원(33.52%)을 더블 스코어로 누르면서 합산 득표율 61.74%(박찬대 38.26%)로 압승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당원 지지세가 의원 지지세를 꺾는 현상은 이재명 체제 민주당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며 “정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의 길이 뉴노멀임을 다시 입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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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박찬대 후보의 축하를 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의 역풍을 타고 17대 국회에 입성한 정 대표는 줄곧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였던 20대 총선 땐 컷오프(공천 탈락)됐지만 견고한 바닥 지지층을 발판 삼아 21대 국회 복귀에 성공했다. 정 대표는 당선 직후 “이재명 대통령도 저도 당 주류가 아니었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민주당의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정청래가 당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3일 첫 일정으로 전남 나주 수해 복구 현장을 찾아 1시간가량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호남의 발전을 위해 정청래 체제에서 뭔가 호남인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지난 대선 국면에서 ‘골목골목 선대위원장’을 맡아 호남에 상주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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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전남 나주시 노안면 오이농가를 찾아 농민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과 전 정권에 맞서는 ‘비(非)타협’ 노선이 당분간 정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전망이다. 경선 초반 협치를 내세웠던 박 의원을 비판하며 강성 지지층에 호응해 당권을 잡은 만큼, 대야 강경 노선의 결실을 당원들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전날 “내란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과 그 동조 세력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단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 해산 심판 가능성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 내란 동조 세력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국민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며 “그때 당 대표로서 현명하게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15일 국회가 법무부에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대로 ‘개혁 입법’ 속도전에 나설 태세다. 당선 직후 당내 ‘검찰·언론·사법 개혁 TF’를 상징적으로 출범시키며 “추석 전 반드시 마무리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현재 국회에는 전대 기간 정 대표가 발의한 검사징계법·검찰청법 개정안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법관평가위원회를 신설할 수 있게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이 계류돼 있다.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밀어붙여온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 호흡을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

당원 중심주의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정 대표는 당권 출마 선언 때부터 전당대회에서 의원·대의원·평당원 간 투표권 차등을 없애고 최고위원에 평당원 1명을 지명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번 대표 임기가 이재명 대통령의 남은 대표 임기인 1년에 불과하다는 것도 정 대표가 당원 주권 강화 드라이브를 밟을 배경으로 지목된다. 정 의원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1년간 당원 장악력을 극대화한 뒤 연임에 성공해 차기 총선 공천권을 쥐는 것을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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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 11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 군민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골목골목 경청투어에서 이 후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정 대표가 전투력만으로 167석 거여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느냐다. “대통령이 일만 할 수 있도록 싸움은 내가 하겠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이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시정 연설을 앞두고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에게 “어떤 길이 바람직한지 우리가 끊임없이 함께 논의해야 된다”며 국회의 숙의 역할을 강조했다. 당내에서도 벌써부터 “대표 이후의 행보는 달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정 대표처럼 당심을 무기 삼았던 이 대통령도 대표 시절 ‘레드팀’을 따로 두고 반대 의견도 충분히 경청하는 방식으로 당을 운용했다”며 “한쪽으로 치우치면 결국 당 지지도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도 이 지점을 ‘정청래 체제’에 대한 비판 포인트로 삼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정 대표는 취임 일성부터 ‘일당 독재’ 유지를 위해 언론과 검찰 장악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는 물론 ‘내란 종식’을 주장하며 국민의힘을 향해 폭주하고 있다”며 “국정운영의 한 축인 야당을 적대시하고 악마화하는 정 대표의 공격적 인식에 국민적 우려가 매우 크다”고 논평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도 앞다퉈 ‘정청래와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이 스스로 위기를 심화시키는 면이 있지만, 거대 여당이 야당을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중도층의 이반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 대표는 정책위의장에 한정애(4선) 의원, 사무총장에 현 국정기획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조승래(3선) 의원을 임명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중립을 지킨 두 사람 발탁에 대해선 “합리적 성향으로, 정 대표의 강성 이미지를 중화할 탕평 인사”(초선 의원)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 대표 비서실장(한민수), 정무실장(김영환), 대변인(권향엽)에는 초선 의원들이 전진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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