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다 알면서도 방치해온 과학입국 걸림돌[최준호의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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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열린 청소년 명예 국정기획위원 위촉식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모르는 게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인수위원회를 대신한 국정기획위원회가 활동을 마무리할 시점도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나라를 살리겠다는 공약이 구체적인 국정과제로 등장하리라 기대한다. 실은, 창대한 계획 없는 정부는 없다. 국정과제를 바탕으로 나름 구체적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다들 하지 않은 게 있다. 과학기술 발전과 이를 위한 연구개발(R&D)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방치해왔다. 고름이 깊은 곳을 그대로 두고, 장밋빛 그림만 덧칠하니, 정책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 과학을 외면하거나 부당하게 개입한 탓이다.

차미영 독일 막스플랑크 단장 #“정년까지 독립 연구권한 받아”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인사#덩어리 예산 받아 자율로 계획

외면하거나 부당하게 개입하거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문제는 해답을 내놓기 어렵다. 때론 당장 고차원방정식의 해법을 찾기보단, 밖으로 눈을 돌려보는 게 어떨까. 지난해 7월 차미영(45) 기초과학연구원(IBS) CI단장 겸 KAIST 전산학부 교수가 막스플랑크 연구소 단장으로 취임해 독일로 떠났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세계 3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하나다. 1948년 설립 이래 31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단일 기관으로 세계 최다다. 차 교수는 독일 보훔에 있는 막스플랑크 사이버보안 및 프라이버시연구소의 최초 외국인 여성 단장으로 취임했다. 차 교수의 임기는 정년인 67세까지, 사실상 종신제다. 그에겐 정년까지 매년 20억원의 연구비가 이미 확보돼 있다. 연구주제는 오로지 차 교수에게 달려있다.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 취임 1년을 맞은 차 교수를 e메일과 메신저 등으로 인터뷰했다. 그의 독일 생활 속에 한국이 찾아야 할 해법이 있을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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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플랑크에 새로 만들어진 조직인 AICS(AI, Computing and Society) 의 출범식에서 차미영 단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막스플랑크연구소]

벌써 1년이다. 어떻게 지냈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막스플랑크 단장들과 만나는 기회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팁을 얻고 있다. 그사이 작지만 뜻깊은 성과도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의 포럼 등에 발표자로 초청받았고, 이들과 협업을 통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 꿈이 뭔가.
내 꿈은 단순히 논문으로 마무리되는 연구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데이터과학이 실제 세상 속에서 실현되고, 누군가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쓰이는 것이다.

(차 교수는 막스플랑크에서 ‘인류를 위한 과학’ 연구그룹을 이끌고 있다. KAIST와 IBS에 있으면서 해 온 일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그는 AI를 활용해 인공위성 영상 빅데이터를 분석해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고, 여러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빈곤·재난 탐지 등 사회문제를 푸는 데 주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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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독일 보훔의 막스플랑크 사이버보안 및 프라이버시연구소의 신관 착공식에서 차미영 단장이 연구소장(가운데) 등과 함께섰다. 연구소는 2019년 설립됐지만,그간 자체 건물이 없이 지내다가 지난해서야 착공식을 할 수 있었다. [사진 막스플랑크연구소]

막스플랑크의 연구소장, 단장의 임기와 실제 권한이 궁금하다.  
연구단장 정년(만 67세)까지의 임기와 독립적인 연구 권한을 보장받는다. 협회 내의 요직을 맡거나 하면 정년이 연장되고, 노벨상과 같은 큰 상을 받은 경우에도 정년이 연장된다. 연구소 운영은 단장들이 함께 참여하는 의사결정 기구(Board of Directors)를 구성해서 민주적으로 의견을 교류한다. 단장 중 한 명이 연구소장 역할을 2~3년 주기로 순환하며 맡게 된다. 각 단장은 자신의 연구 주제와 방향을 자유롭게 설정하고, 충분한 자원과 인력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막스플랑크의 수장과 각 연구소장 선임에 대한 권한은 누구에 있나.  
막스플랑크협회는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만, 인사권과 운영권에 있어서는 각 연구소와 관련 분야의 연구자가 철저한 자율성을 가진다. 막스플랑크 총재는 회원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선출된다. 각 연구소의 단장은 내부의 심층 평가 절차를 거쳐 선발된다. 

(총재의 임기는 6년이며, 한차례 연임할 수 있다. 막스플랑크의 모든 인사는 협회 안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독일 언론들이 오히려 ‘정부의 영향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할 때도 있다.)

막스플랑크의 연구비는 어떻게 확보되나.
막스플랑크연구소(MPG)의 연구비는 대체로 독일 연방정부가 50%, 해당 연구소가 위치한 주정부가 50%를 각각 지원한다. 전체 연구비가 기관 단위 총액으로 내려오고, 연구비의 규모는 연구단장과 개별 연구책임자가 새로 임명되면 그만큼 함께 늘어난다. 연구소 운영을 위한 고정비용 역시 별도로 본원에서 배당되며, 연구자들이 행정 부담 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  이런 점은 막스플랑크 뿐만 아니라 프라운호퍼 등 독일의 다른 연구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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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가 개원 59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구 본원에서 개원기념식을 열었다. [사진 KIST]

권한 없는 임기 3년 한국 출연연 원장 

한국 출연연 원장은 형식적으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임명하지만, 실은 대통령실이 인사검증을 하는 방식으로 틀어쥐고 있다. 원장의 임기는 3년에 불과하다. 기관평가가 우수하면 연임을 할 수 있지만, 말뿐이다. 3년짜리 원장의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다. 첫해는 전 원장 때 짜놓은 것을 집행하고, 3년 차에는 현 원장과 관계없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예산은 ‘정부 출연금+정부 과제 수주(PBS)’로 구성되는데, 인건비와 운영비 등 경직성 예산을 제외하면 원장의 뜻대로 쓸 수 있는 예산은 많아도 전체의 5% 안팎에 불과하다. 연구책임자는 PBS 과제를 따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출연연들을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의 임기도 3년, 집권 정부의 입김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없다. KAIST를 비롯한 4대 과기원도 출연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R&D 과제는 사실상 각 정부부처에서 만들어진다. 그 시작이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다. 행정부가 그렇다면 입법부는?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다. 상임위원 20명 중 과학기술인은 3명에 불과하다. 과기정책보다는 방송 이슈로 세월을 보낸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라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명확하다.

막스플랑크연구소

세계 3대 기초과학연구소로 불린다. 흔히 연구소로 번역하지만, 실제로는 막스플랑크협회 산하 독일 전역에 퍼져있는 80여개 연구소로 구성돼 있다. 한국의 정부 출연 과학기술연구원들을 통할하고 있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비슷한 구조이지만, 권한과 자율성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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