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인력 없어 스토킹도 못막는데…흡연∙쓰레기 단속하는 기동순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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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구역 흡연 약 800건 단속. 상습 흡연 장소에 포토존과 폐쇄회로(CC)TV 설치해 환경 개선. 초등학교 앞 승하차 구역 불법 주·정차 20건 단속 및 통학 버스 9회 지도·점검. 어두운 공원에 비상벨 설치.

최근 경찰철장 표창을 받은 기동순찰대(기순대)의 ‘우수 실적’ 사례다. 기순대는 2016년 사라졌다 2023년 ‘최원종 서현역 흉기 난동’과 같은 흉악 범죄가 잇따르자 이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 2월 재출범했다. 일선서 강력팀 약 500곳과 맞먹는, 2624명(지난 2월 기준)의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불과 1년 반만에 존폐 위기에 처했다. 경찰 안팎에서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인력 낭비와 치안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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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기동순찰대원이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일대 순찰 중 길가에 세워진 오토바이에 대해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5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전국 기순대 우수사례’ 표창 실적을 보면, 경범죄 적발이나 시설 개선 등 재출범 당시 스토킹 범죄나 흉악범죄를 막겠다는 취지와는 거리가 먼 사례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망에선 “경찰관이 금연 환경을 왜 조성하냐” “타 기관의 일을 하는 것”이란 비판적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한 지구대 경찰관은 “밤을 새워 살인범을 잡거나 평생 강력범죄 수사하느라 고생해도 한번 받기 힘든 게 경찰청장 표창인데, 구청이 할 것 같은 일을 해놓고 받았다는 게 의아하다”고 했다.

“지구대·파출소 인력 10% 빠져나가”

기순대는 전국 시·도청 직속으로 330개 팀이 활동 중이다. 경찰 내부에선 기순대 재출범 이후 일선 지구대·파출소가 인원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지역 한 지구대 경찰관은 “기순대에서 지구대 인원을 데려가서, 정작 치안 1선 기지에 해당하는 지구대에선 휴가자가 한 명도 없는데도 순찰차를 다 운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도 “지구대·파출소별로 약 10%의 인원을 데려갔다”고 했다.

실제 전국 2044개 지구대·파출소 중 절반 이상인 약 1200곳은 정원 미달 상태다. 지역 경찰 인력 부족 문제가 최근 잇따르는 스토킹 등 관계범죄에 대한 미흡한 대응이나 사건 처리 지연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받는 상황이라, 현장 경찰관들의 불만과 스트레스는 더 가중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기순대에 투입한 예산과 인력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순대는 지난해 50억2500만원의 예산을 썼고, 올해 55억9500만원을 집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승합차 330대를 사는 데 130억3500만원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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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경범죄·도로교통법 위반에 활동 집중 

그러나 기순대 실적은 경범죄나 도로교통법 위반 적발 등에 집중돼 있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기순대 1인당 범인 검거는 4.9건, 수배자 검거는 1.9건인 것과 달리 경범죄 위반 통고처분은 6.6건, 도로교통법 위반 통고처분은 38.5건에 달했다.

최근까지 기순대에 근무했던 한 경찰관은 “온종일 시설 점검만 하는 팀도 있다. 보통 자율적으로 업무를 정하기 때문에 다른 부서에 비해 부담이 없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경찰관은 “기순대가 쓰레기 무단 투기나 노상 방뇨 등 경범죄 단속을 많이 한다”며 “지역 가게를 돌며 치안 관련 설문조사를 한 걸 실적으로 올리는 것도 봤다”고 전했다.

예정처는 “기순대 운영에 따른 인력 재배치와 예산 투입의 효율성을 판단하기 위해 성과 분석을 체계적으로 실시한 후, 운영 및 확대 여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청은 지역경찰 인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본청 등 내근 행정관리 인력의 감축을 통해 기순대를 신설한다고 했는데, 취지에 부합하게 인력이 배치·운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기순대와 기존 지구대·파출소 인력의 업무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경찰청은 예정처에 “지역경찰은 ‘차량 위주’의 순찰 활동을 하지만 기순대는 ‘도보 위주’로 순찰하고, 지역경찰이 경찰서 소속으로 지구대·파출소 관할 위주로 근무하는 것과 달리 기순대는 시·도경찰청 소속으로 광역 근무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예정처는 “지역경찰로 대체할 수 없는 임무인지는 심층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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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기도 파주에 기동순찰대 폐지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직협 “기순대 당장 폐지” 현수막 내걸어

논란이 계속되며 기순대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중이다. 이날 경찰 노동조합 격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기순대 폐지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전국 각지에 내걸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기순대 인원을 고정적으로 운영하는 대신, 스토킹 등 범죄가 빈발하거나 재난 상황일 때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경찰청 관계자는 “관할 중심 지역경찰과 달리, 기순대는 주민과 더 가까이 접촉하면서 ‘문제 해결적’인 경찰 활동을 하는 전문성이 있다”며 “재난 상황이나 탄핵 집회 현장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 대응에도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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