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폭우로 숨진 80대 유족, 충남지사·서산시장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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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내린 극한 호우로 충남 서산에서 목숨을 잃은 80대 남성의 유족이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소방서 책임자를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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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충남 서산시 석림동 청지천이 범람해 도로와 인근 마을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충남 서산에 사는 고(故) A씨(83) 유족은 7일 오전 충남경찰청을 찾아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완섭 서산시장, 황정인 서산경찰서장, 최장인 서산소방서장 등 4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 "안전관리 예방 의무 다하지 않았다" 

유족 소송대리인은 “재난 안전관리상 예방 의무가 있는 충남지사와 서산시장은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경찰서장과 소방서장은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고소장 제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관리기관의 사전·사후 대처가 미흡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막지 못한 인재(人災)”라고 주장했다.

유족 측 대리인인 이주하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사고 당일 (피해자들로부터) 구조요청이 있었는데도 도로에 대한 전면 통제가 늦게 이뤄지면서 피해가 커졌다”며 “홍수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도 하천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도 적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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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충남 서산시 도당천 제방 피해 현장을 찾아 응급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극한 오후가 쏟아진 지난 17일 오전 0시부터 10시23분까지 서산에는 438.5㎜의 비가 내렸다. 시간당 최고 강수량은 114.9㎜를 기록했다. 폭우 여파로 도로가 물에 잠기고 하천이 범람하면서 A씨 등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지천 범람으로 도로 침수…차량 8대 고립 

사망자가 발생한 서산시 석림동 청지천 일대에서는 오전 3시59분 ‘차량이 물에 잠겼다’는 첫 신고를 시작으로 수십 건의 구조 요청이 접수됐다. 당시 청지천이 범람하면서 도로에는 차량 8대가 고립돼 있었다. 소방당국은 오전 5시14분쯤 3명을 구조한 데 이어 오전 6시15분쯤 심정지 상태의 B씨(60대 남성)를 발견, 인근 서산의료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인근에서 물에 빠진 A씨는 오전 11시25분쯤 숨진 채로 발견됐다. A씨는 사고 당일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 중이었다. 운전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 사고 현장에서 침수로 시동이 꺼지자 보험사에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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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충남 서산에 40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초토화된 비닐하우스 뼈대에 부유물이 잔뜩 걸려 있다. 연합뉴스

유족 측은 당시 서산지역에 집중호우가 예보된 상황인데도 홍수 위험지역인 사고 지점을 통제하지 않아 사고가 확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 신고가 접수된 오전 3시59분 직후 곧바로 도로를 통제했다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서산시가 도로를 통제한 건 최초 신고를 접수하고 2시간30분이 지난 오전 6시30분이었다.

하천 정비사업 중단 사고 원인 꼽혀

이주하 변호사는 홍수와 폭우에 대비해 청지천 폭을 넓히는 사업이 중단된 것도 피해 원인으로 꼽았다. 충남도 주관으로 2013년 시작한 정지천 정비사업(총 9㎞)은 3.34㎞ 구간에서만 폭을 2배(55~84m→100~190m)로 넓힌 뒤 2017년 공사가 중단됐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남원교 지점은 정비사업이 중단된 나머지 5.71㎞ 구간 인근에 있다. 잠홍저수지에서 시작한 청지천 물은 간월호를 거쳐 천수만을 빠져나가지만 극한호우로 물이 역류하면서 범람한 것으로 관계 당국은 추정했다.

이주하 변호사는 “정지천은 다수의 하천, 저수지와 연결된 데다 폭이 좁은 구조적 문제까지 안고 있다”며 “행정안전부 지해지도 작성 기준에도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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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오전 충남 서산시 석림동 청지천이 범람해 도로와 인근 논밭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유족 측은 경찰과 소방당국의 미흡한 구조와 수색작업도 문제로 지적했다. 사고 당일 A씨가 지인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오전 6시11분이었는데 그는 5시간이 넘어서야 숨진 채 발견됐다. A씨 유족은 “경찰과 소방당국이 수색과 구조작업을 철저하게 진행했다면 사망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족 측 "재난 예방·대응 의무 안한 책임져야"

이주하 변호사는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각각 고유의 권한을 갖는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소방 등의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재난 예방과 신속한 대응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산시는 “당시 시내 전체가 물에 잠긴 상황으로 폭우 관련 신고가 300여 건 이상 접수됐다”며 “통제를 하는 데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유족 측의 고소와 별개로 충남도는 사망사고 당시 서산시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감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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