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2년 물질한 이유…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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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한수풀해녀학교에서 열린 해녀은퇴식에 참석한 최고령 해녀 고명효 할머니와 딸 홍길선씨가 제주 바당(바다)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최충일 기자
“물(물결)이 창창창창할 때(세고 높을 때) 거꾸로 가면(거슬러 헤엄치면) 귀가 팡 터져요(귀먹어요)”
1931년생인 고명효 할머니는 18살때부터 물질을 했다. 80세 조금 넘을 때까지 소라를 땄으니 적어도 62년을 바다에서 일한 셈이다. 물질하며 고막에 무리가 간 탓에 지금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95세 해녀 어멍(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딸 홍길선(60·제주시)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홍씨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어머니 왜 그렇게 살아’ 그랬다. 밭일하다 물질하고 고생만 하시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지금 와서야 우리 9남매 이렇게 잘 키워주시느라 그랬다는 걸 겨우 알게 됐다”고 울먹였다.
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 2리 어촌계가 연 해녀은퇴식 ‘해녀 삼춘(어르신), 폭싹 속았수다(정말 수고 많았습니다)’에 참석한 모녀의 이야기다. 은퇴식 이름은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따왔다. 딸 홍씨도 이 드라마 팬이었다고 했다. 그는 “나도 (주인공) 애순이처럼 어머니 고생시키는 해녀 일이 미웠다”며 “드라마를 보며 예전 내 생각이 나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날 은퇴식이 열린 한수풀해녀학교에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였다. 최고령인 고명효 할머니 외에 김심영(88)·양정자(83)·이명자(79)·장금자(88)·홍부자(83)·이성화(95)·고순화(88)·조정자(91) 할머니 등 베테랑 해녀 9명과 가족, 현직 해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함께 은퇴한 양화자(90) 할머니는 요양원에 입원해 불참했다.
참석자들은 은퇴 해녀들에게 “해녀 삼춘들 복삭 속앗수다(‘폭싹 속았수다’의 제주식 표기)”며 큰 박수를 보냈다. 마을에선 ‘바람 거센 날에도, 파도 높은 날에도 늘 바다를 지켜주신 우리 해녀님’이란 문구가 적힌 감사패를 전달했다. 해녀 학생들의 축하도 이어졌다. 전날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김문주(26)씨는 “해녀 선배님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시는 자리에 함께해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김성근 한수풀해녀학교장(어촌계장)은 “찬 바닷속에 몸을 던져 가족을 먹이고, 마을을 살피고, 제주를 지켜온 분들의 은퇴를 함께 축하해 영광”이라며 “이제는 두 손 내려놓고, 두 발 편하게 뻗고 건강한 당신의 시간을 누리길 바란다”고 축사했다. 은퇴식을 함께한 (사)제주해녀문화협회(이사장 양종훈)는 지난해 5월 첫 해녀 은퇴식을 시작으로 올해 2월 제주시 도두동, 5월 김녕 등에서 해녀 은퇴식을 주관해 왔다.
제주해녀는 2015년 제1호 국가중요어업유산, 이듬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17년에는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2023년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도 올랐다. 하지만 제주의 해녀 숫자는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2623명이다. 1970년 1만4143명에서 계속 줄어 2023년 2839명으로 처음 3000명대가 붕괴했다.
한수풀해녀학교는 2008년 제1기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지난해까지 총 9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48명이 입학했다. 이달 말까지 안전 교육과 물질 실습, 해녀 문화 이해 등 현장 중심의 교육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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