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축구도 야구도 아닌데 '팬 25억명'…한국은 낯선 이 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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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486]은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들이 발로 뛰어 만든 포토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일보는 상암산로 48-6에 있습니다. 

인기 스포츠 종목 순위 1위인 축구와 쌍벽을 이루는 2위. 전 세계에 25억명 이상의 팬이 있고(축구는 35억명), 5년간 중계권료가 약 8조원에 이르는 시장을 가진 메가 스포츠. 슈퍼볼도 메이저리그도 아니다. 국내에서는 아직은 낯선 스포츠인 크리켓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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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인천 서구 연희크리켓경기장에서 천안학교스포츠클럽 크리켓대회가 열렸다. 이날 천안 가온중 선수(붉은 유니폼)가 천안 월봉중 선수(흰 유니폼)의 수비를 뚫고 배트를 뻗어 아슬아슬하게 득점에 성공하고 있다.

“애들아! 위킷만 노려!”
“앞으로만 칠 필요 없잖아, 파울이 없으니깐”

전국에 내린 폭염 경보로 휴대폰에 연신 안전알림 문자가 울렸던 지난달 26일 인천 서구 연희크리켓경기장에서는 대한크리켓협회가 주최한 ‘천안학교스포츠클럽 크리켓대회’가 한창이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천안 월봉중과 천안 용곡중, 천안 가온중 소속 크리켓 새싹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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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가온중 선수들과 감독 선생님이 경기 시작을 앞두고 화이팅을 하고 있다.

절정에 이른 무더위에 선수들이 탈진할 것에 대비해 경기는 시간이 적게 걸리는 '9오버 룰'로 한 팀이 2경기씩 참여해 총 3경기가 진행됐다. 공은 기존의 코르크를 가죽으로 감싼 공이 아닌 안전을 위해 테니스공을 사용했다. 이날 경기 심판진은 국가대표 선수 출신 국제심판인 전현우 선수 등 3명이 교대로 참여했다. 크리켓 심판진은 심판 2명과 경기감독관 1명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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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켓 경기장 모습. 직사각형의 피치 위에서 천안 월봉중 선수가 타격을 하고 있다. 외야의 흰 선을 노바운드로 넘기면 한 번에 6득점을 획득할 수 있다.

크리켓은 타원형 잔디 그라운드 안쪽의 '피치'라고 불리는 가로 22.56m 세로 3.66m의 직사각형 공간에서 피치 양쪽 끝에 놓인 '위킷'이라 불리는 폴대를 지켜내는 경기다. 양 팀 선수는 각각 11명으로 이뤄지며, 볼러(투수)와 배트맨(타자), 위킷키퍼(포수) 필더(수비수) 등의 포지션을 맡는다. 볼러(투수)는 위킷을 맞춰 무너트리기 위해 원바운드로 공을 던지고 배트맨(타자)은 위킷을 보호하기 위해 배트로 공을 쳐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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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에 나선 천안 용곡중 선수가 월봉중 볼러(투수)가 위킷을 노리고 던진 공을 쳐내고 있다.

배트맨이 공을 친 뒤 맞은편의 배트맨 라인(배팅 크리즈)까지 가면 1득점이 인정된다. 상대 수비가 공을 잡고 위킷을 맞추기 전까지 왕복할수록 득점이 올라간다. 타구 한 볼이 땅볼로 외야 경계선을 넘어가면 포(Four, 4득점), 홈런처럼 노바운드로 넘어가면 식스(six, 6득점)가 된다. 크리켓 용어로 득점은 런(Run)이라 부른다. 배트맨이 타격하여 득점한 것 이외에도 ‘엑스트라’라고 불리는 다양한 득점 방식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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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에 나선 월봉중 선수가 타격에 성공 후 득점을 올리기 위해 맞은 편 위킷을 향해 달리고 있다. 크리켓에서는 타격 후에 배트를 들고 달린다.

크리켓에서 배트맨(타자)을 아웃시키는 방법도 다양하다. 필더(수비수)들은 피치를 중심으로 경기장을 둥그렇게 에워싸고 자리를 잡고, 글러브 없이 맨손으로 수비한다. 배트맨이 친 뜬 공을 잡거나, 바운드된 공을 잡아 달리기를 시작한 배트맨이 반대쪽 라인에 닿기 전에 먼저 위킷을 맞추면 아웃이 된다. 또한 야구의 삼진과 유사하게 볼러(투수)가 공을 던져 위킷을 맞춰 무너트려도 아웃이다. 그 외에도 배트맨이 공에 손을 대거나 수비를 방해하는 등의 흔치 않은 몇 가지의 아웃 방식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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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에 나선 월봉중 선수들이 공격팀이 타격한 뜬 공을 맨손으로 잡으며 코트(Caught) 아웃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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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에 나선 월봉중 선수(흰 유니폼)가 가온중 선수(붉은 유니폼)보다 먼저 위킷을 맞춰 런 아웃(Run out)에 성공하고 있다.

10명이 아웃되거나, 경기에서 정한 오버 수에 이르면 공수가 교체된다. 크리켓에서 '오버'란 던진 공의 횟수다. 1오버는 여섯번의 정상적인 투구를 의미한다. 볼러(투수)가 공을 던질 때 팔꿈치를 굽히거나 투구 라인(포핑 크리즈)을 벗어나는 등의 투구 반칙인 ‘노볼’이나 야구에 폭투와 비슷한 ‘와이드’는 투구 수에서 제외한다. 최근 국제 경기에서 가장 익숙한 게임방식은 ‘T20’이다. 20오버가 끝나면 공수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2이닝으로 경기가 끝난다. 공수교체는 한 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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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러(투수)로 나선 가온중 선수가 팔을 쭉 펴고 공을 던지고 있다. 크리켓에서는 볼러가 팔꿈치를 굽혀 공을 던지면 투구 반칙(노볼)으로 1점을 잃는다.

배트로 공을 쳐서 득점을 올린다는 점이 야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크리켓 룰은 다른 점이 많다. 크리켓은 배트맨(타자) 한 명이 아웃당할 때까지 경기를 계속하며 점수를 무제한으로 낼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혼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타격할 수도 있다. 또한 그라운드가 타원형이기 때문에 파울이 없어 공격에 나선 배트맨은 360도 방향 어느 곳으로든 타격할 수 있다. 야구와 다른 크리켓의 묘미 중 하나다. 볼러(투수)는 1오버 투구를 끝내면 반드시 교체되며, 던지는 방향도 반대쪽 위킷으로 바뀐다. 공격 시에는 2명의 배트맨이 동시에 나서서 일정 투구 수 만큼 번갈아 타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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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중 이수아 선수가 높은 공을 점프하여 타격하고 있다. 파울이 없는 크리켓은 타원형 구장의 어디로든 공을 보내도 되기에 다양한 타격 방식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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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윌봉중 서가은 선수는 혼자 2경기동안 50득점(런)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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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중과 가온중의 마지막 경기에서 8오버동안 타석에 선 서강은-김수아 듀오가 동료 선수들의 응원에 화이팅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 나선 크리켓 새싹들은 불볕더위에도 불구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승리를 향한 열띤 경쟁을 벌였다. 타구가 경계선을 넘어 포(Four, 4득점)를 획득하거나, 필더(수비수)들의 멋진 중계 플레이로 아웃을 만들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외곽에 마련된 그늘막에 대기하는 선수들과 코치 선생님도 경기 내내 응원의 함성과 박수로 힘을 북돋웠다. 이날 학생들의 열기는 폭염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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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에 나선 가온중 볼러(투수)가 공을 던지고 있다. 볼러 옆에 주자 역활의 배트맨이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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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에 나선 용곡중 선수가 크게 배트를 휘두르며 헛스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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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에 나선 가온중 선수와 수비에 나선 용곡중 선수가 득점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경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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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득점에 성공한 가온중 배트맨들이 자리를 교체하며 배트를 부딪히고 있다. 크리켓에서는 홀수 득점 시에는 배트맨들이 서로 위치를 바꿔 타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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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에 나선 용곡중 선수들이 공격 팀의 추가 득점을 막기 위해 바운드된 공을 빠르게 집어들어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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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중 선수가 멋진 타격으로 포(4득점,Four)를 기록한 후 동료 선수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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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중 선수들이 수비의 멋진 플레이로 배트맨보다 먼저 위킷을 맞추는 런 아웃(Run out)을 기록하자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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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중 선수들이 바운드 된 공이 외야 경계선을 넘어 포(4득점,Four)를 기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공을 걷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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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중과의 2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용곡중 선수들이 감독을 맡은 이겨라 선생님에게 달려가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 이겨라 선생님은 지난해 여자 국가대표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이날 열린 월봉중과 용곡중의 경기는 103대 75로 월봉중이, 용곡중과 가온중의 경기는 100대 97로 용곡중이, 가온중과 월봉중의 경기는 63대 62로 가온중이 승리를 거둬 3팀 모두가 사이좋게 1승씩을 나눠 가졌다. 이날 심판을 맡은 전현우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승패를 가리지 못한 것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라며, "결과적으로는 모두의 승리인 셈"이라고 참가 학생들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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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심판으로 나선 국가대표 출신 전현우 선수가 경기를 마친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날 첫 경기 MVP로 뽑힌 천안 월봉중 주장 이수아 학생(16)은 “크리켓은 야구와 달리 혼자서도 점수를 많이 낼 수 있는 게 재미있다”라며, “특히 타격으로 포(Four, 4득점)나 식스(Six, 6득점)를 기록하는 순간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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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러로 나선 천안 월봉중의 주장인 이수아 선수가 투구를 하고 있다.

월봉중 감독으로 팀을 이끈 임은영 체육 교사는 "학교에서 크리켓을 하면서 아이들이 집중력과 협동심을 길러지는 것이 보였다”며,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아이들도 이제는 언제 연습을 하냐며 보채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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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중 감독을 맡은 임은영 선생님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낯선 종목이지만, 팬 인구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면 크리켓은 전 세계에서 축구 다음가는 인기 종목이다. 전 세계 축구 팬은 35억 명, 크리켓 팬은 25억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지난 2022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인도 크리켓 리그인 인디언 프리미어 리그(IPL)는 향후 5년간 스트리밍과 TV 중계권료를 60억2000만 달러(당시 약 7조 7736억원)에 팔았다. 회당 중계권료가 100억에 달한다.

국내에는 2012년 대한크리켓협회가 처음 창설됐고, 그해 12월에 처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했다. 우리 남자 대표팀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8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남자 대표팀의 현재 세계 랭킹은 89위로 지역 예선을 함께 치르는 일본(44위)보다 한참 아래다. 대한체육회에도 소속되지 않아 국가 차원의 지원도 부족한 데다 선수층도 얇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2년마다 열리는 크리켓 월드컵 대회 지역 예선이나 동아시아 대회에는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최근에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 국제 대회에서는 8경기 중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상대로 한 2경기에서 승리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김남기 대한크리켓협회장은 “현실적으로 2028년 올림픽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지만 2032년에는 꼭 참가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크리켓은 올해 4월 2026년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복귀했고, 2028년 LA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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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기를 마친 가온중·용곡중·월봉중 학생들이 크리켓 경기장 필드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글=우상조 기자 xxxxxxxxxxxxxxxx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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