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팩트체크] 미국산 사과ㆍ감자 수입 빨라질까…국내 농가 타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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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과연합회, 한국과수농협연합회 관계자들과 농민들이 지난달 3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미국산 사과수입 반대 집회를 열고 정부의 미국산 사과 수입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한·미 통상 협상에서 미국산 사과ㆍ감자 등 과채류 검역 절차를 개선하기로 한 이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농가는 미국산 과채류 검역에 일종의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절차)’이 생기면서 결국 농산물 시장 개방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통상당국은 이런 지적에 선을 긋는다. 현재 8단계인 검역 절차를 간소화하는 게 아니라 가칭 ‘미국 전담 데스크’를 신설해 검역에 필요한 자료를 활발히 공유하고, 양국 간 소통을 늘리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소통을 강화한다고 해서 수입 속도가 빨라진다고 장담할 순 없다”고 말했다.

양국이 구두로만 협상한 만큼 세부적인 절차 개선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과 정부가 구상 중인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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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위해 인위적으로 검역 절차를 건너뛸 수 있나.
불가능하다. 농산물(식물)의 수입위험분석(IRAㆍImport Risk Analysis) 절차는 국제 규범 및 국내 식물방역법에 근거해 마련한 것이고 모든 국가에 똑같이 적용한다. 총 8단계로 이뤄져 있다. 상대국의 수입 요청이 접수(1단계)되면, 해당 농산물을 수입했을 때 어떤 병해충이 국내에 유입될 수 있는지 위험분석(2단계)을 한다. 핵심은 병해충 위험을 평가하는 3ㆍ4단계다. 예를 들어 미국산 사과 수입을 검토한다면 관련 병해충 목록을 작성하고, 해당 병해충별 위험 수준과 방재 난이도를 평가하는 과정이 이 단계에서 이뤄진다. 5단계는 양국이 협의해 위험관리방안을 작성하는 것으로, 사실상 농산물 검역의 마지노선이다. 수입품 검역 요건 초안 작성을 하는 6단계까지 왔다면 국내 시장에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된다.  
미국이 검역에 속도를 내달라고 요구하는 품목은 무엇이고, 각각 어느 단계에 와 있나.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현재 미국산 농산물 중 위험분석 절차가 진행 중인 품목은 15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발간하는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통해 이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해왔다. 현재 가장 빨리 수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은 감자다. 캘리포니아ㆍ애리조나 등 11개주(州) 감자의 경우 이미 6단계까지 와있다. (플로리다ㆍ뉴저지 등 22개주 감자는 이미 수입하고 있다.) 국내 농가에서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사과는 1993년 수입 요청 이후 3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2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국 정부가 사과농가를 보호하려 한 측면도 있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그간 사과는 소고기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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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미국 전담 데스크를 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농산물 검역 절차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인력은 20여 명이다. 병해충 위험 분석 등을 담당하는 위험관리과 11명, 해당 국가 담당자와 서신을 주고받는 등 협력 업무를 하는 수출지원과 15명 등이다. 현재 수출지원과 주무관 1명이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ㆍ멕시코와의 검역 관련 협력 업무도 하고 있다. 미국 전담 데스크를 어느 부서에 어떤 직급으로 둘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검역 관련 인력을 보강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전담 데스크가 생기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이 빨라지나.
장담하긴 어렵다. 수입국과 수출국의 병해충 분포 상황, 상대국의 피드백 속도 등 여러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2월 말 기준 수입이 허용된 31개국 76개 품목의 경우 평균 8.1년이 소요됐다. 가장 단기간에 수입된 건 중국산 체리로 3.7년이 걸렸다. 반대로 한국에서 상대국 위험분석 절차를 거쳐 수출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7.8년이다. 뉴질랜드에 감귤을 수출하기까지는 무려 23년이 소요되기도 했다.

상대국이 원하는 수출 품목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이 지연될 수도 있다. 수입국과 수출국은 통상 1년에 한 번 '식물 검역 양자 회의'를 열어 어떤 품목부터 위험분석 절차를 진행할지 우선순위를 정한다. 일례로 일본산 사과의 경우 5단계까지 왔음에도 수입 논의가 중단됐다. 관련 병해충 피해를 막기 위해 훈증(화학물질로 살균ㆍ살충)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비용이 늘고 유통 기간이 줄어드는 만큼 일본 입장에서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양국 간 협의 후 일본은 우선순위를 배로 바꿨다. 미국의 우선순위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미국산 사과, 감자를 수입하면 국내 농가는 무조건 타격을 입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미국산 감자의 경우 22개주 감자는 이미 수입하고 있지만, 국내 농가의 타격이 크지 않다. 국내산 감자가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그만큼 우월하기 때문이다. 체리도 훈증을 한 건 수입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품질이 떨어지다 보니 국내산 체리와 경쟁이 안 된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사과를 수입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수입하느냐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사과농업인단체 관계자는 “검역 절차가 간소화되는 건 아니라는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농가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결국 미국산 사과가 수입된다면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에 국내 농가의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쌀·소고기를 포함한 미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 압력은 계속 될 수밖에 없는 만큼, 방어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국내산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송 장관은 “이번 한·미 통상 협상에선 국내 농업의 민감성을 고려해 일단 소나기를 피하기로 한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국산 사과의 생산성을 높이고 품종을 다양화해서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사과를 수입하더라도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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