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폭력 남친 처벌 안 원해” 말해도, 이젠 접근금지 시행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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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관계였던 가해자 A씨에게 피해자 B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A씨는 B씨를 밀치며 때렸다. B씨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피했지만, A씨는 20분간 문을 두드리며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B씨의 112 신고에 출동한 경찰은 결국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다. B씨가 “어차피 헤어질 거라 A씨를 자극하고 싶지 않다”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다.
교제폭력 현행범인데도 경찰이 피해자 보호에 어려움을 겪는 대표적 사례다. “술을 마시면 난폭해지긴 하지만, 평소에는 괜찮아요”라며 피해자가 계속 교제를 이어갈 의사를 밝힌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단순폭행죄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앞으로는 교제폭력 사건에 직권으로 개입해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도록 하는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을 만들어 시행한다고 10일 밝혔다. 지난 5월 경기도 동탄, 6월 대구, 7월 대전 등 교제폭력 살인 사건이 잇따르자 내놓은 대책이다.
경찰은 대응 매뉴얼을 통해 교제폭력 사건에 ‘스토킹처벌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스토킹처벌법에선 ▶상대방에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 등의 행위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경우를 스토킹으로 규정한다.
그동안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고 계속 교제하는 경우 가해자의 행위를 ‘상대방 의사에 반한’ 스토킹으로 볼 수 있을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경찰은 ‘처벌 불원, 교제 지속 등은 사후적 사정일 뿐 폭행 등 신고를 했으므로 가해자 행위는 피해자 의사에 반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로 했다. 아울러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교제 중이라도 폭행 등 범죄 목적의 ‘접근’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므로 스토킹 성립이 가능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특히 경찰은 ▶결별을 요구하거나 ▶외도를 의심하거나 ▶결별 후 스토킹을 하는 것은 강력범죄의 전조 증상으로 보고 초기부터 최고 수준의 피해자 보호 조치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 일회성 폭력 행위에도 긴급 응급조치(주거지 100m 이내·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를 직권으로 명령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제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
경찰은 매뉴얼 제작을 위해 수사 사례를 대검찰청과 공유해 법률 해석의 전국적 통일성을 도모했고, 전문가 자문과 법무부와의 협의도 거쳤다고 밝혔다. 매뉴얼을 감수한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교제폭력을 규율하는 별도의 법이 없는 상황에서 스토킹처벌법상의 보호조치 법률 적용을 고려한 것이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조주은 경찰청 여성전학교폭력대책관은 “이번 매뉴얼은 교제폭력 관련 입법 전에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없도록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교제폭력 방지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오는 9월 국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관련 법안 입법화 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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