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전한길에 난장판 된 野전대…그 뒤엔 '큰손' 보수유튜브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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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가 8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고성과 몸싸움으로 얼룩진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의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파문의 중심에는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씨가 있다. 전씨는 당시 행사장에서 탄핵 찬성파 후보를 겨냥해 “배신자”라고 외치는 등 야유와 항의를 주도했다. 파장이 커지자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전씨를 향후 모든 전당대회 일정에 출입 금지하기로 했고, 당 중앙 윤리위원회는 11일 회의를 열어 징계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번 사태를 전씨 개인의 일탈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부정선거 음모론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재기를 주장하는 ‘윤 어게인(Yoon Again)’을 핵심 가치로 공유하는 보수 유튜브와 이에 호응하는 강성 지지층이 국민의힘을 뒤덮어버린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것이다.

신재민 기자
실제 이번 합동연설회 소란 뒤 보수 유튜브의 반응은 당내 우려와는 온도 차가 컸다. 성창경tv(구독자 121만 명)는 “전한길 강사가 국민의힘 의원 107명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고 치켜세웠고, 그라운드C(89만 명)는 “좀비 정당에 생기를 줬다. 한길쌤(선생님)과 함께 연호해준 분들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해당 유튜브 댓글 창에는 “윤통과 한길쌤을 지키자”,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자는 보수가 아니다” 같은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합동연설회 행사장에 참석했다며 “배신자들을 한길쌤과 혼쭐 내주고 왔다”는 인증 댓글도 있었다. 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윤 어게인을 외치던 강성 지지층을 오프라인 행사장으로 이끈 창구가 바로 보수 유튜브”라고 했다. 영남 지역 의원은 “요즘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하면 보수 유튜브의 타깃이 돼 조리돌림 당한다. 이 때문에 중립 성향 의원들은 공개 발언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보수 유튜버와 강성 지지층을 하나로 묶는 고리는 윤 전 대통령 옹호다. 야권 관계자는 “12·3 비상계엄은 정당하고, 선거는 부정선거이며, 탄핵 찬성은 배신이라는 게 이들의 핵심 세계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들 유튜브에선 “부정 선거를 제도권에서 계속 외치는 것이 변화를 만드는 것”(그라운드C), “한국 부정선거는 이미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이봉규TV) 는 발언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부정선거를 안 밝히면 다음 선거도 민주당 몰표”라는 댓글도 줄지어 달린다. 일부 보수 유튜버들은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이라는 간판 아래 전당대회에 나선 후보들을 상대로 공동 면접 형태의 토론회를 열거나, 합동 방송을 진행하는 등 뭉치고 있다.

8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일부 당원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탄핵 찬성파(찬탄)'와 '탄핵 반대파(반탄)'로 나뉘어 "배신자"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보수 유튜브 및 이들과 연결된 강성 지지층이 당내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은 국민의힘의 이전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과거에는 유력 정치인을 구심점으로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 조직을 관리해 전세 버스를 행사장에 동원하는 차원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 구독자를 거느린 보수 유튜버들이 윤 어게인, 반탄 논리를 설파하고 이에 감화된 강성 당원들이 제도권 한복판에서 소란도 불사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미 이런 기류에 올라탔다. 김문수·장동혁 당 대표 후보는 각각 지난 7일, 지난달 31일 전한길씨 등이 기획한 보수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참석했다. 고성국TV에는 최수진 의원, 김재원 전 최고위원,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김민수 전 대변인 등 최고위원 후보들도 줄줄이 출연했다. 보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적 있는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유튜브 출연 뒤 응원 문자가 쏟아지고, 지역 방문 땐 당원들에게 ‘요즘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받았다”며 “일부 정치인 사이에선 ‘최고위 등 당 공식 석상에서 발언하는 것보다 유튜브에 나가는 게 더 잘 먹힌다’는 말도 돈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최근 국민의힘의 상황은 진보 유튜버가 여론몰이를 하고,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이 호응해 당내 여론을 주도하는 민주당과 비슷하다는 평가다. 중립 성향의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친명이 친윤으로,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뜻의 은어)이 배신자로 바뀐 것 외에 본질은 큰 차이가 없지 않나”라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지지율이 16%까지 추락(4~6일 전화면접조사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한 상황에서 윤 어게인, 부정선거 블랙홀에 갇히면 보수 진영의 반등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비정상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을 배제할 힘이 없을뿐더러, 외려 이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다시피 한 게 지금 국민의힘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국정을 맡길 수 없는 정당이란 인식이 중도층에서 커지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정당으로 전락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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