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뜨겁고도 시원한 ‘한밤의 레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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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에 강원 인제스피디움에서 펼쳐진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나이트레이스. 레이싱 카가 굉음을 내며 트랙을 질주했다. [사진 슈퍼레이스]

지난 9일 밤 강원 인제의 레이싱 전용 인제스피디움. 어둠이 내린 트랙 위에 형형색색 불빛으로 단장한 경주용 차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한여름 밤의 레이싱 축제로 자리매김한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나이트레이스의 메인 경기 ‘토요타 가주 레이싱 6000 클래스’ 출전 차들이었다.

각자의 그리드(출발 포지션)에 자리 잡은 차들은 싸움을 앞둔 맹수 같았다. 낮게 으르렁대며 거친 배기음을 뿜어내는 모습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위협적이었다. 출발 직후 서행하며 타이어를 달구더니, 신호등이 레이스 개시를 알리자 일제히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급가속했다. 질주하는 레이싱카들이 내는 굉음이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1만2285명 가슴에 꽂혔다.

한 바퀴 3.908㎞인 트랙은 거대한 사냥터였다. 40바퀴를 도는 내내 모든 차량이 서로 물고 또 물렸다. 언뜻언뜻 드러나는 앞 차량의 작은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한편, 반대로 뒤 차량의 추월 시도를 교묘하게 방어하며 버텼다. 치열한 승부의 현장은 올해 국내 개봉 영화 최고 흥행작인 브래드 피트 주연의 ‘F1 더 무비’ 속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다 부딪히자 번개 치듯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곡선 주로를 회전하던 차가 트랙을 이탈해 미끄러지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우승의 영예는 올 시즌 드라이버 랭킹 포인트 1위(87점) 이창욱(금호 SLM)에게 돌아갔다. 20바퀴째에서 선두로 올라선 뒤 단 한 번의 추월도 허용하지 않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체커드 플래그(레이스 종료를 알리는 체크 무늬 깃발)를 받았다. 그는 올 시즌 세 차례 나이트레이스에서 두 차례 우승하며 ‘밤의 황제’로 인정받았다.

홍정욱 슈퍼레이스 운영팀장은 “여름철 한낮에는 레이싱 카 실내 온도가 최고 60도까지 치솟는다. 관전하는 팬도 무더위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지난 2012년 나이트레이스를 도입한 이후 선수와 팬 반응이 모두 좋아 횟수와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레이싱 대회 타깃 연령층은 통상 가족과 함께 트랙을 찾는 30~40대다. 하지만 나이트레이스는 친구·연인끼리 함께하는 10~20대가 우선 순위”라고 덧붙였다. 나이트레이스의 흥행은 숫자로 확인된다. 2016년 하루 9600명 수준이던 평균 관중이 올해 2만3583명까지 늘었다. 지난해 7월엔 역대 최다 관중(3만1558명) 기록을 세웠다.

한국은 ‘모터스포츠의 불모지’로 여겨져 왔다. 지난 2010년부터 4년간 전남 영암에서 열린 포뮬러원(F1) 그랑프리 대회가 흥행 실패로 끝난 일은 그런 평가의 대표적 근거다. 그럼에도 모터스포츠계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고, 조금씩 먹혀들면서 최근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인천광역시가 F1 그랑프리 대회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고, 현대자동차의 F1 진출 고민은 잠잠할 만하면 외신에 보도된다. 마석호 슈퍼레이스 대표이사는 “나이트레이스 등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이 안전하고 완성도 높은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면서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세계적인 자동차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모터스포츠에서도 선도국이 될 수 있도록 팬들에게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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