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인천공항 면세점 ‘오판’…외국인은 시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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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서 미운 오리 전락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인천공항 면세점이 ‘미운 오리’로 전락했다. 공항을 찾는 여행객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면세점 이용객 수는 이에 못미치면서다. 높은 자릿세를 감당하지 못한 대기업 면세점들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상대로 임차료 40%를 낮춰달라고 요청했지만 합의 가능성은 낮다. 달라진 관광·쇼핑 패턴에 맞게 면세 사업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4~5월 신라·신세계 면세점이 제기한 임차료 감액 민사조정 신청에 대해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사 측은 “현 임차료는 신라와 신세계가 10년 간 운영권을 낙찰받기 위해 직접 제시한 금액으로, 2년 만에 감액을 요구하는 것은 입찰 취지와 기업 경영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임차료 조정시 공사가 배임 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도 했다.

갈등은 지난 2023년 인천공항 면세사업자 입찰 당시 공사가 변경한 임차료 산정 방식에서 불거졌다. 엔데믹 이후 여행 수요가 회복되면 면세점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공사는 고정 금액 대신 출국 여객수에 비례해 임차료를 산정했다. 신라는 여객 1명당 8987원, 신세계는 9020원의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10년 사업권을 따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인천공항 여객은 지난해 3500만 명으로 2022년(800만 명)보다 급증해 임차료도 치솟았지만 면세점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신라·신세계 면세점 인천공항점은 매달 50억~60억원 규모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이들 업체는 임대료를 조정할 수 없다면 약 2000억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감수하더라도 입점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이다.

여행객들의 쇼핑 패턴이 달라진 영향이 컸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공항 면세점 대신 시내 곳곳에 위치한 올리브영, 다이소 등으로 발길을 옮겼다. 면세점 큰 손이던 중국 따이궁(代工, 보따리상)도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면세품 해외 화물운송 규제 이후 크게 줄었다.

해외 여행을 떠나는 내국인 여행객들도 가격 비교가 편한 온라인 면세점이나 현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제품을 직구(직접 구매)했다.

시내 면세점 매출도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14조2249억원(104억 달러)으로 달러 기준 3년 연속 감소세다. 신라면세점(호텔신라 TR부문)은 지난해 영업손실 697억원을 기록하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도 지난해 영업손실 359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신라·신세계의 경쟁 면세점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천공항 재입성을 노리는 롯데면세점으로서는 2023년보다 약 40% 낮은 가격에 면세사업권을 낙찰받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인천공항 명품 부티크 면세구역에 입점하는 대신 임차료를 신라·신세계의 8분의 1(객당 1109원)로 합의해 상황이 낫다.

전문가들은 이참에 면세점들이 사업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시내면세점 간 합작법인(JV), 공항면세점 품목별 사업권 등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 향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가의 명품 대신 실속형 제품을 중심으로 한 면세 운영 형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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