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조선호텔 "레시피 금고에 있다"…김치로 연 500억 버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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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금고에 둔 ‘프리미엄 김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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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표님이 취임하고 나서 김치공장 방문하는 게 필수 코스예요.” 정승은 조선호텔앤리조트 김치사업팀장의 얘기다. 호텔에서 김치를 판다고 하면 의아해할 사람들이 많지만, 신세계그룹 조선호텔과 SK네트웍스의 워커힐호텔의 김치 장사 이력은 이미 20~30년씩 된다. 최근엔 롯데호텔(2023년), 파라다이스시티(2024년), 서울드래곤시티·메이필드 호텔(2025년) 등 후발 주자들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국의 특급 호텔들은 왜, 어쩌다 김치 사업에 뛰어들게 됐을까. 객실 숙박료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김치로 얼마나 벌기에? 호텔들의 김치 전쟁, 그 시작은 1997년 워커힐호텔이었다.

◆김치도 프리미엄 시대=1997년 나온 ‘워커힐 수펙스(SUPEX) 김치’는 주요 국제 행사와 대통령실 주관 행사 식탁을 꿰찬 프리미엄 김치의 대표 격이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김치를 개발하라”는 SK그룹 고(故) 최종현 회장의 특명을 받고 개발한 김치다. 워커힐은 자체 김치 연구소와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호텔 김치로 재미를 가장 크게 본 곳은 조선호텔이다. 김치 판매로 연간 500억대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텔 한식당 ‘셔블’ 등에서 김치를 맛본 고객들 요청에 따라 김치를 판매한 게 시작이었다. 2011년 서울 성수동에 전용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 공장까지 세워 김치 생산에 나섰다.

워커힐·조선호텔 모두 두 종류의 김치를 판다. 호텔이 직접 만들어 호텔 자사몰 등에서만 파는 프리미엄 김치와, 이보다 가격을 낮추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해 쿠팡·컬리·대형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대중 김치다. 접근성을 높여 보다 많은 이들이 호텔 김치를 맛보게 하기 위해 대중 상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롯데호텔은 2023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롯데호텔 측은 외부 업체에서 납품 받은 김치에 대해 “호텔 김치 같지 않다”는 고객 불만을 받은 이후 직접 김치를 담가 팔게 됐다고 설명한다. 30년간 한식을 담당해온 베테랑 셰프가 레시피 개발에만 1년 이상 시간을 들였다. 이성호 롯데호텔 커머스비즈니스 팀장은 “후발주자인 만큼 처음부터 품질 격차를 벌리는 ‘초격차’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OEM 방식이지만 레시피를 만든 셰프가 제조 공장으로 매일 출근한다. 공장에 상주하며 재료와 공정 등을 챙기기 위해서다.

호텔 김치는 1㎏에 1만~4만원 선이라 저렴하지는 않다. 대신 최상급 원재료부터 특급 셰프의 레시피, 급이 다른 위생과 품질 등을 내세운다. 김치 맛의 핵심은 ‘김치속’에 있다. 호텔 요리사들이 커다란 김장 대야에서 양념을 배합하고 배추 낱장 켜켜이 속을 넣는다. 정승은 조선호텔 팀장은 “레시피 관리는 생산팀 파트장이 주도적으로 하고 16명이 김장에 투입된다”라고 했다. 이 레시피는 금고에 보관한다.

워커힐호텔 김치의 특징 중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운 고춧가루. 이용혁 워커힐호텔 스토어팀 매니저는 “호텔에서 비즈니스 파트너와 식사하신 분들이 김치를 먹고 이에 고춧가루가 끼면 민망하지 않겠냐”라며 “고춧가루를 24회(평균은 8~10회)가량 걸러 입자를 최대한 곱게 만들었다”라고 했다. 찹쌀풀을 쓰는 것도 비법. 찹쌀풀을 넣으려면 냉장 관련 HACCP 시설 외에, 가열 공정을 추가로 갖춰야 해 일반적인 김치 제조 시설에선 쓰기 어렵다는 게 호텔 측 설명이다.

롯데호텔은 조미료를 최대한 쓰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단맛은 감로잎으로, 감칠맛은 토마토로 내는 식이다. 이성호 롯데호텔 팀장은 “이 조건을 맞춰 조리할 수 있는 OEM 공장을 알아보러 다녔는데 다들 ‘세상에 없는 레시피’라고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신세계그룹에 속한 조선호텔은 그룹의 막대한 유통력을 십분 활용해 김치 사업을 키웠다. 프리미엄 김치의 매출 신장도 있었지만, 신세계푸드가 이마트에 로열티를 주고 호텔 대중 김치 판매를 온라인 등에서 확대한 게 주효했다. 워커힐호텔도 판매 채널을 확장하고 있다. 이용혁 매니저는 “2019년 쿠팡에 수펙스 김치를 판매했는데 과(過)숙성 문제로 3개월 만에 중단한 적이 있다”라며 “기능성 용기로 포장을 바꿔 쿠팡, 컬리 등에서 판매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호텔 김치로는 처음 해외 판로도 뚫었다. 미국 서부 한인마켓에 워커힐호텔 김치(대중 제품)를 납품하기로 하면서다. 롯데호텔은 최대한 많은 이들의 경험을 목표로 한다. 백화점 입점을 늘리고 이달부터 롯데마트에서도 판매할 예정이다. ‘롯데호텔 리워즈’와 연계한 할인 이벤트 등으로도 소비자 접점을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특급호텔이 왜 김치를?=호텔 김치 시장을 개척한 워커힐호텔은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고 호텔엔 외국인 이용객이 많은 만큼 김치에 대한 좋은 경험을 널리 알리고 싶어” 김치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호텔은 객실 영업 중심의 기존 사업 구조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제2의 코로나가 터져도 견딜 수 있는 신사업 발굴이 필수”라고 했다. 김치 사업은 특히 식음료 사업장을 운영하는 호텔들이 기존 인프라(인력·조리시설)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호텔들은 식음료 상품을 많이 취급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다”라며 “경험 있는 분야에서부터 신사업을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호텔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해 고급화 전략에서도 유리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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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돈 되는 사업’임을 입증한 사례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선호텔, 워커힐호텔 사례를 통해 호텔 김치가 부가 매출원으로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조선호텔은 2021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7월까지 누계 매출도 전년과 비교해 14.5% 증가했다. 김치사업 연매출(500억대)은 올해 1분기 조선호텔 객실 매출(472억원)과 맞먹는다. 워커힐호텔의 프리미엄 김치(워커힐 수펙스 김치)와 대중 김치(워커힐 호텔 김치)의 지난해 매출액도 각각 전년보다 10%, 78% 증가했다.

최근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이 확산하며 사 먹는 김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닐슨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포장 김치 시장은 약 6560억원으로 2021년(5370억)보다 22% 이상 커졌다. ‘기왕이면 더 좋은 것’을 원하는 수요도 점차 늘 것이란 게 업계 평가다. 이홍주 교수는 “호텔 빙수가 ‘경험’과 ‘고급스러움’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듯 호텔 김치도 점차 일반 소비자 시장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봤다.

◆호텔김치 말고도 더 있다=대상, CJ제일제당 등 주요 김치 제조사들은 호텔 김치를 어떻게 볼까. 한 포장 김치 제조사 관계자는 “호텔 김치는 물량이 워낙 적고 종류도 제한적이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대상의 김치 브랜드 종가는 지난해 국내 판매와 해외 수출로 5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냈다. 이 같은 대기업 외에 영세 업체들은 호텔과 공략 대상이 다르다. 윤영채 대한민국김치협회 실장은 “주요 김치 업체들은 대부분 중소·영세 업체들로, 외식업체나 식당·급식 등에 대규모로 납품하다 보니 시장이 겹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호텔들은 ‘호텔식의 일상식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며 간편식(HMR·RMR)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롯데는 김치를 활용한 김치찌개를 이달 중 출시할 계획이다. 조선호텔은 2018년 볶음밥 간편식 출시를 시작으로 삼계탕, 초계국수, 소 갈비탕 등 상품 가짓수를 늘려가고 있다. 워커힐호텔도 명월관 갈비탕, 곰탕 등을 판다.

유양호 동신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호텔들이 이젠 호텔 상품을 호텔 밖에서 판매하기로 나선 셈”이라며 “매출 확장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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