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야트막한 언덕, 둥그런 지붕 오밀조밀…그리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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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가 자신의 고향 마을을 그린 ‘동복산촌’(192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둥그런 초가 지붕이 오밀조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초가집과 밭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난 황톳길을 따라 아이를 업고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이 정겹다. 전남 화순군 출신의 화가 오지호(1905~1982)가 1928년 자신의 고향 마을을 그린 ‘동복산촌’이다. 고향을 바라보는 화가의 따스한 시선이 보인다. 리움미술관에 오랫동안 소장돼온 이 작품이 국내 전시에 처음으로 나왔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14일 개막하는 전시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에 우리 눈에 새롭게 보이는 풍경화가 즐비하다. 전시는 우리 땅의 의미를 한국 근현대 풍경화를 통해 조망하는 것으로, 김환기·유영국·이상범·오지호·윤중식 등 근현대 미술가 75인의 작품 210여 점을 선보인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 흐름 속에서 한국인 마음속에 간직된 ‘고향’ 풍경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유영국의 ‘산’(1984).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고향’을 키워드로 일제강점기 ‘잃어버린 땅’, 분단·광복 이후 시기는 ‘되찾은 땅’,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 분단 이후 ‘그리움의 땅’으로 변화하는 우리 땅의 모습을 네 가지 주제로 구성해 선보인다. 한국화 1세대 대표 화가인 이상범(1897~1972)의 ‘귀로’(1937)와 ‘효천귀로(曉天歸路)’(1945)는 각각 ‘잃어버린 땅’과 ‘되찾은 땅’ 편에 나뉘어 소개돼 눈길을 끈다. 특히 ‘효천귀로’는 화가가 1945년 8월 15일 광복되던 날 당일에 그렸다고 기록된 것으로, 새벽 안개가 자욱한 들판의 언덕을 넘어 소 끌고 가는 풍경이 꿈결에 본 것처럼 묘사됐다.
‘고향’이 주제인 만큼 화가들의 다채로운 고향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경남 통영 출신의 전혁림(1915~2010)의 ‘통영풍경’(1992)엔 남망산 정상에서 바라본 통영항이 푸른 물빛으로 출렁이고, 제주 출신 변시지(1926~2013)의 ‘고향’은 거친 바람에 등이 굽은 나무가 쓸쓸해 보인다.
‘이건희컬렉션’에서 나온 걸작 14점도 선보인다. 변관식이 전남 무창의 봄 풍경을 6폭 풍경으로 제작한 ‘무창춘색’(1955)도 그 중 하나다. 활짝 핀 복사꽃이 이어지는 풍경은 낙원의 모습 그 자체다. 이밖에 박돈(1928~2022)의 ‘성지’(1957), 최영림(1916~1985)의 ‘봄동산’(1982), 김종휘(1928~1987)의 ‘향리’ 등 작가들의 실험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관람료 2000원(덕수궁 입장료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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