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정애 50억vs구윤철 10억…양도세, 당정 파워게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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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4대 과학기술원 총장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을 둘러싼 당정 간 이견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의 기 싸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구 부총리는 정부의 재정 컨트롤타워이고, 한 의장은 거대 여당의 정책 수장이다.

기 싸움의 구도는 지난 10일 고위 당정 협의회 현장에서 뚜렷해졌다. 공식 안건이 아니었던 대주주 기준에 관해 한 의장은 정부의 세제개편안(시가총액 50억원 이상 보유→10억원 이상 보유)에 맞서 현상 유지론을 주장했다. 한 의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안에 대한 당내 찬반 의견을 종합 전달하면서도 결국 “정부가 현행 50억원 기준을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선명히 제시했다.

구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도“심사숙고하겠다”고만 반응했다. 부과 대상 대주주 범위를 넓혀도 세수 증대 효과가 2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에도 구 부총리는 “정책 목표가 세수 확대 한 가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버텼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구 부총리는 정부가 쉽게 물러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한번 밀려버리면 앞으로도 여론전으로 밀어붙일 때마다 정부가 번번이 후퇴하게 되는 형국이 될 것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대통령실이 현행 50억원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발 보도가 나오자 구 부총리는 주변에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구 부총리가 믿는 건 세제개편안 자체가 대통령실과 조율 과정을 거쳐 마련된 방향이라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입법 사안도 아니고 시행령 사안인데 정부가 입장을 꺾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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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한 의장은 비공개 당정 협의 이후 정부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11일 기자들과 만나 “기업이 자본 시장을 통해 자본을 제대로 조달받을 수 있게 큰 흐름을 바꾸려고 하면 대주주 기준을 현행 그대로 크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일엔 라디오에 출연해 “(대주주 기준 범위 조정은) 시행령이어서 정부의 입장이 중요하지만, 저희의 우려를 정부가 모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주 심각하게 고려를 할 것이라고 본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앞서 정청래 대표는 대주주 기준 강화를 둘러싼 당내 논란이 가열되자 지난 4일 함구령을 내리고 한 의장에게 의견 수렴을 지시했다. 사실상 한 의장을 이 사안과 관련한 ‘유일한 입’으로 지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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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전민규 기자

수렴된 의견이라지만 일각에서 한 의장의 개인적 소신이 대치의 원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의장은 문재인 정부 때 여당 정책위의장을 맡았을 때도 정부의 대주주 기준 강화를 막아낸 적 있다. 2020년 정부는 세수 부족을 이유로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 의장은 정책 자체를 2년간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관철했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개인투자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부를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 승리가 리더십의 시험대가 되는 정청래 대표 입장에서도 표심을 거스르는 정책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한 의장이 정부와 맞서는 궂은 일의 총대를 맨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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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당정의 파워게임을 일단 관망하는 모습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2일 대통령실이 현행 50억원 유지로 기울었다는 보도를 공개 부인하면서 “시장 상황을 보면서 당정 간 조율을 지켜보겠다는 게 대통령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밑에선 당정 간 엇박자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포착된다.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재편안을 여당이 나서 반대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부 이해당사자 여론에 밀려 국가 세제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면 거기에 분노할 국민이 더 많을 것”이라며 “당 지도부가 정부안 폐기로 입장을 정했을지라도 당내 70명가량의 의원들이 정부 정책에 여전히 찬성하고 있고 이런 구도를 이 대통령도 잘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신임 당 지도부의 의욕은 알겠지만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을 막아서는 그림이 좋아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 시절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앞장섰던 것과 달리 대주주 기준에 관해선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세수 확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란 현실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의 방점은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원상 복구하는 데 찍혔고, 대주주 기준 강화도 그 일환이었다. 낙수효과를 노린 부자 감세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고 그간 축소한 세입 기반을 복원해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게 이재명 정부 세제 정책의 기조다. 이 대통령은 전날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도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국가재정이 매우 취약하다”며 “국가 살림을 하다 보니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은 없고, 참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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