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로도 만들어진 '수업료'...일제강점기 아이들 글짓기에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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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을유문화사

생생하다. 눈길이 가는 1차 사료다. 1938년 조선의 일본어 어린이 신문인 경일소학생신문이 개최한 제1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와 이듬해 2회 대회의 수상작 모음이다.

일본에서 일제 강점기 영화와 연극, 여배우론과 한일관계사를 연구한 지은이는 1940년 조선에서 제작‧개봉된 영화 ‘수업료’의 바탕이 당시 어린이의 작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포함해 당시 한반도에 살던 조선과 일본 어린이들의 글을 담은 문집을 찾아 우리말로 옮겼다.

군국주의 일본이 조선에서 자국민과 조선인 어린이를 어떻게 가르치려고 했는지가 당시 식민지 조선과 전쟁의 생생한 현실과 함께 다가온다. 제국이 적어내기를 원하는 작문과 어린이가 쓰고 싶었을 글 사이의 괴리가 느껴진다.

‘수업료’는 광주북정공립심상소학교 4학년 우수영이 학비를 내지 못하자 장성까지 한참을 걸어가 친지에게 돈을 얻어오는 내용이다. 의지와 심리를 잘 표현해서인지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당시 일본인에겐 무상교육을 하고, 조선인에게만 수업료를 받은 차별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행간에 숨은 의미를 잘 새겨야 참뜻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총독부 ‘의식화 교육’의 영향도 드러난다. 함경남도 혜산진공립심상소학교 2학년 나스 노리히코는 숨진 형의 몫까지 하루에 두 차례 황국신민맹세를 제창하는 내용을 적었다. 1937년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암송을 강제한 군국주의 맹세문이다. 어린이용은 천황에게 충의를 다하고 인고단련(고통을 참고 이기며 몸과 마음을 담금질함)으로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다는 내용이다.

경성수송공립심상소학교 2학년 김원희는 어머니와 함께 미츠코시 백화점(지금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갔다가 여자 두세 명이 센닌바리(千人針)를 하는 걸 보고 어머니도 따라서 한 사연을 적었다. 이 어린이는 ‘지나(중국)에 가서 전쟁하고 있는 병사님’을 떠올리며 ‘부디 천황 폐하를 위해 열심히 싸워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러면서 ‘나도 빨리 센닌바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센닌바리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풍습으로, 기다란 흰 천에 붉은 실로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무운장구를 빌었다. 전체주의 주입식 교육이 어린이 정신세계를 얼마나 깊이 물들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경성한동공립심상소학교의 2학년 최준창은 어머니가 국어(일본어)를 열심히 배우는 사연을 적었다. 이제부터 어머니와 자신이 국어로 대화하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글을 끝냈다.

서슬퍼런 제국주의도 가족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광주중앙공립심상소학교 3학년 타마루 사다코는 ‘군대에서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오빠’로부터 병원에 가기까지 26일이 걸렸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린 내용을 적었다. 위문편지를 계기로 어린이들이 군인들과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사연이 적잖게 보인다.

그래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은 가족과 자연. 그다음이 동물과 놀이, 일상, 학교다. 어린 마음들이 의지할 곳이 어디였는지 잘 보여준다. 앞으로 연구할 게 많아 보이는 귀한 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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