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李, 대북 3대 원칙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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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로 북한에 던진 메시지는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이었다. 북한은 전날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고 했지만, 이 대통령은 “북측이 화답하기를 인내하며 기대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인내’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썼다. 한반도 긴장 완화 기조를 이어가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인내’라는 단어를 통해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이 전날 “자국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하려는 망상을 명문화해놓고 각종 침략적 성격의 전쟁 연습에 빠져 있다”고 한 데 대해 그럴 뜻이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명된 9·19 군사합의는 상호 간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11월 북한이 이를 전면 폐기한다고 선언했고, 지난해 6월 한국도 국무회의를 통해 군사합의 효력 정지 안건을 의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군사합의 복원을 할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재개된 육·해상 완충구역 내 포사격과 기동훈련이 다시 중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며 “앞으로도 우리 정부는 실질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축사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북’ 또는 ‘북측’이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은 한반도 내 북쪽 지역이 대한민국의 일부라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어 북한이 거부감을 갖고 있다. ‘남측’, ‘북측’은 남북이 교류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이 대통령이 경축사를 통해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이라는 대북 정책 3원칙을 밝혔다”고 평가했다. 양 총장은 특히 이 대통령이 사용한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양 총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에 있는 ‘현재의 핵’뿐 아니라 향후 남한에 도입될 수 있는 ‘미래의 핵’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남한이 앞으로 미국의 전술핵 도입 등을 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포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광복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해선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며 과거사에 대한 원칙적 대응과 미래지향적 협력이라는 투 트랙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곁에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면서도 “일본은 마당을 같이 쓰는 우리의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이를 두고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과거사 언급을 최소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곧 있을 한·일 정상회담과 최근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호감도가 높아진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거사 언급 분량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2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도 이 대통령의 경축사 내용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조야는 안보 전략적 측면에서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하고 있고, 그 핵심 전제를 한·일 협력에 두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안정적인 한·일 관계를 추구하는 이 대통령의 모습은 트럼프 행정부에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노력에 일본 정부 또한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촉구성 메시지를 낸 직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패전 80년을 맞아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총리가 전몰자 추도식에서 ‘반성’을 언급한 것은 13년 만이다. 한·일 정상회담이 좀 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경축사와 별개로 재일 동포를 향한 특별 메시지를 내고 “피와 땀과 눈물 속에서도 언제나 빛나는 애국심을 발휘한 재일 동포들의 역사를 대한민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정치권을 향해선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한다”고 했다. “우리 정치는 우리 국민의 이러한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푸른색과 붉은색, 흰색이 교차하는 넥타이를 매고 경축사를 읽었다. ‘통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지난 6월 4일 취임일 브리핑 등에서 착용한 넥타이 디자인이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의 풍경은 통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철수 국민의힘 대표 후보는 경축사를 하는 이 대통령을 향해 ‘조국·윤미향 사면 반대’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며 항의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행사장에 나란히 않았지만 서로 악수도 하지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송 위원장은 “정 대표가 옆에 앉았는데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했다. 이어 “정 대표가 ‘악수는 사람하고 하는 법’이라는 이상한 말을 했는데 저도 똑같다”며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가 정청래와 마음 편하게 악수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지난 2일 취임 이후 제1야당 국민의힘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정 대표를 향해 송 위원장도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송 위원장은 “(경축사에는) 국민의힘과 지지자를 향한 부분이 제법 있었다. 그런 부분은 대단히 유감”이라고도 했다.
다만 송 위원장은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에 대한 지원 부분은 적극 동의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기원을 생각한다)를 언급하며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것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응당한 일”이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경축사 중인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윤미향 전 의원의 사면 반대 플래카드를 들어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사진 안철수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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