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푸틴 침략' 눈감아준 트럼프…'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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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회담에서 푸틴의 휴전안을 사실상 수용하면서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 규명 없이 외교적 복귀의 길만 열어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곧 유일한 파병국으로 침략전쟁에 가담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면죄부를 안겨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17일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를 넘기면 전선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푸틴의 제안에 트럼프도 호응하는 분위기다. 미·러가 영토 거래로 전쟁을 매듭지으려 하면서 푸틴의 전쟁범죄 문제는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한 채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2023년 푸틴에 대해 우크라이나 아동 납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번 알래스카 회담을 현지 취재한 뉴욕타임스(NYT)의 외교·안보 전문 데이비드 생어 기자는 "체포영장으로 인해 유럽 대부분 국가에 발도 못 딛던 푸틴의 '국제적 외톨이(pariah)' 처지는 이번 회담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고 지적했다. 생어는 또 이번 회담을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빗대 “그때도 트럼프와 김정은 간에 포옹과 악수, 친서가 오갔지만 북한의 핵무기 증강은 계속됐다”고 짚었다.
러시아에 1만 2000여명의 병력과 대량의 무기·군수물자를 제공한 김정은 역시 푸틴의 공범이나 다름없지만 단죄를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푸틴은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에도 김정은과 통화하며 사전에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고 크렘린궁은 밝혔다. 미·러 회담 결과에 따라 북한군의 추가 파병이나 병력 운용, 철군 여부 등이 달라지는 만큼 이를 긴밀히 논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성훈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김정은과 푸틴의 단죄 문제는 애초에 이번 알래스카 회담의 의제도 아니었을 것"이라며 "북·러는 동반자 관계라는 인식을 굳힌 것으로 보이며 당분간 관계가 이완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더라도 지난해 6월 체결된 북·러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이는 한반도 안보 정세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될 수 있다. 해당 조약은 '상호 군사 원조' 조항을 명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최초로 열었다.
또 북한은 이번 파병을 통해 현대전 경험을 쌓고 한국을 노린 무기의 성능을 시험했으며, 대가로 러시아 방공 시스템 등 무기 체계를 이전 받았다. 파병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을 경우 북한의 불법 군사 협력 범위가 다른 나라로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6일 "조국해방(광복) 80돌(80주년)에 즈음해 우리 나라를 방문한 러시아 예술 사절들의 경축공연이 지난 15일 평양체육관에서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트럼프의 무관심으로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양자 차원에서 규명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도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데다 미국 역시 크게 적극성을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러 군사협력은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한 사안이지만, 러시아는 지난해 3월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던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을 무력화하는 등 개의치 않고 있다. 양국 밀착을 견제할 동력이 사라진 가운데 김정은과 푸틴은 파병을 대놓고 인정한 뒤 결속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15일 북한에서 '조국 해방의 날'로 부르는 광복절을 맞아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김정은에게 파병에 사의를 표하는 축전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에 앞서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도 지난 14일 평양을 찾아 파병 북한군의 "용기와 헌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다음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2년 만에 방러해 푸틴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 행사에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북한이 이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일체의 적대행위도 할 뜻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러시아를 뒷배로 얻은 북한이 유리한 전략적 환경이 조성됐다고 보고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는 국정원의 판단(지난달 30일, 국회 보고)처럼 북한이 당분간 한국에 더 큰 '성의'를 요구하며 몸값을 높일 거란 관측이 나온다.
북·러 군사협력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이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12·3 비상계엄 이후 정상외교가 멈추면서 정부가 북한군 파병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데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명시적인 비판을 자제한 게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27일 TV토론회에서 대러 관계에 대해 "지금처럼 불필요하게 적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북·러 군사협력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워싱턴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뒤 미 국무부는 “북·러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외교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빠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러시아교수는 “북·러 밀착이 국제 규범을 넘어서는 현실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양국 간 군사 협력이 한국 안보에 큰 위협이 되는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한·러 관계 회복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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